약간의 거리를 두고 남 보듯 바라봐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부모의 가난을 답습하지 않고 더 나은 삶을 살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가난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아버지의 사망 이후 아버지의 인생에 대하여 그리고 사춘기 시절 아버지와 자신 사이에 찾아온 거리에 대해 쓴 작가의 회고록.
아버지는 퇴근도 없이 농장에서 부모로부터 착취를 당하며 유년기를 보내다가, 퇴근이 보장되었지만 고된 공장 노동자로서 청년기를 보냈고, 가정을 이룬 뒤에는 작은 식료품점 상인으로 자신의 자리를 지키다 삶을 마감한다. 전쟁을 통해 작게나마 이룬 것을 한 번에 잃기도 하고 가난 때문에 어린 자녀를 잃어본 아버지는 가장으로서 물질적 필요에 굴복하는 삶을 살게 된다.
물질적 필요에 굴복하는 삶은, 필요한 것을 모두 갖추더라도 이것을 유지하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을 주고 긴장 상태로 살게 만든다. 긴장 상태는 사람을 예민하게 만들어 가족들끼리 짜증 내며 말하는 법 말고 다르게 말하는 법을 모르고, 예의 바른 말투는 낯선 사람을 위한 것이며, 따뜻하게 애정표현 할 여유도 없고 할 줄도 모르게 만든다. 딸이 별다른 의도 없이 이야기하는 선망의 말을 가볍게 넘기지 못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비교당했다고 공격적으로 인식하여 뜬금없이 욱하고 화를 내거나 불평한다. 혹독한 시대가 준 트라우마에 대한 방어적 태도임을 알았다면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었을 텐데, 그걸 이해하고 수용하기에 사춘기 소녀는 지적으로 편협하고, 상처에 취약했다. 사춘기에 이르러 끝을 알 수 없는 계속되는 결핍을 느낀 이 무렵부터 작가는 자신을 아버지와 분리한다. 이후부터 그녀의 기억 속 아버지는 더 이상 “우리“로 표현하지 않고 “그”와 “나”로 분리되어 거리가 생긴다.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 고학력으로 부르주아 계층에 진입한 딸은 노동자 아버지와는 다른 인생을 살게 되고, 그 거리는 죽는 순간까지 끝내 좁혀지지 못했다.
아버지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본 어머니는 “다 끝났어”라고 말했지만, 작가는 그제야 서로에 대해 더 이상 할 말이 남아있지 않았던 아버지에 대한 글을 쓰기로 한다. 가공되지 않은 솔직한 표현들을 통해 아버지가 살았던 세계이자 작가 자신이 살았던 세계이기도 한 곳의 한계와 색깔을 말해준다. 아니 에르노의 지극히 개인적인 글은 보편적인 감정을 불러온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어린 시절 모든 면에서 완벽하기만 한 슈퍼맨인 줄 알았던 아버지가 취약한 면이 있는, 어느 부분에서는 부족한 매우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받았던 엄청난 충격이 떠올랐다. 또 내가 누린 좋은 것들을 아버지도 누려보길 바라는 마음에 아버지에게 어울리지 않는 선물을 한 나를 향해 “좋긴 한데 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는 것 같다”며 멋쩍게 웃으며 불편함을 표현하던 아버지를 보며 실망감을 느꼈던 지난날이 떠올랐다.
부모와 자식은 같은 시간을 각기 다른 생물학적인 시점으로 살아가 결국 서로 다른 세계를 구축한다. 너무 가깝기 때문에 더욱 이해하기 어렵고, 이해받지 못했을 때 상처와 실망도 큰 것 같다.
약간의 거리를 두고 아버지의 지난 삶의 궤적과 그가 지금 살아가는 지향점을 파악해 본다. 너무 늦기 전에, 적어도 아버지와 함께 있는 동안이라도 내가 원하는 방향이 아닌 아버지가 원하는 방향에 맞출 수 있는 딸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