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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병장수 Oct 25. 2023

지하로부터의 수기_표도르 도스토옙스키

나를 지옥 속에 가두는 것은 무엇인가?

열등감에 사로잡힌 사회부적응자 주인공의 세상을 향한 투덜거림. 1864년도에 발표된 소설이지만 요즘 사회에 주인공 같은 사람이 참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동시에 과연 나에게는 이런 면이 전혀 없다고 자신할 수 있나 하는 반성을 하기도 했다.  


주인공은 오직 밥벌이를 하기 위해 관청 공무원으로 일하다가 친척으로부터 얼마간의 유산을 받게 되자 바로 일을 그만두고 방구석에 처박혀 일 년간 고립된 생활을 한다. 요즘 시대가 원하는 39살 조기은퇴를 했지만, 그는 세상을 등지고 방구석에 처박혀 끝없는 고독감에 괴로워한다. 백수이고 유산도 크지 않아 도시에 살 필요가 없는데도 굳이 도시 생활을 유지하며 세상을 향한 투덜거림을 지속한다. 사실은 지독히 세상에 수용되고 싶은 그의 본심이 드러난다. 혼자 잘난척해봤자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고 혼자 살 수 없다.


삶은 현실이다. 현실의 복잡한 여러 상황 속에서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며 살아가는 체험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삶은 결코 책 속에서 배운 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 완벽한 사람이나 상황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런 지난한 과정을 몸과 마음으로 체험해 나감으로써 보다 융통성 있는 사고와 태도를 갖게 되고, 각박한 삶에 적응해 나갈 수 있으며, 한층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적당하면 섬세함이겠지만, 예민함은 과도할 정도로 과민해서 간과해도 될 법한 사소한 것들로도 큰 스트레스를 받으며 스스로를 괴롭힌다. 주인공은 자신이 생각하는 상식에만 지나치게 몰두하면서 거기에서 조금이라도 빗나가는 것을 못 참는다. 사회적으로 매너 있게 행동하는 타인의 태도를 위선이라고 평가절하하고, 책으로 쌓은 자신의 편협한 지식만을 절대적 진리처럼 여기는 교만한 사람이다. 다른 사람에게 수용되고자 하는 열망만 가득하고, 타인과 잘 지낼 수 있는 노력은 최소한만 하고 그럴만한 사회적 기술도 없다.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자신에 있다는 것을 끝내 파악하지 못하면 인간은 결국 고립되고, 소외감 속에서 홀로 살수 밖에 없다.


세상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것 같으면 생각해 봐야 한다. 내가 지나치게 과민한 건 아닌지. 실제 체험은 적게 하면서 생각만 많이 하면 망상 속에 빠지기 쉽다. 우울할수록 집 밖으로 나가서 다양한 감각을 체험하고, 업무와 같은 일상생활 기능을 유지하면서 주의를 우울로부터 분산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아 억울하다면 한번 돌아봐야 한다. 내가 편협한 지식 속에 갇혀 나에 대해서는 과대평가하고, 주변 사람들을 과소평가하고 억울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른 사람들과 잘 지내지 못한다면 돌아봐야 한다. 내가 타인과 잘 지내기 위해 실질적으로 어떤 노력을 했는지. 누군가 나와 친해지기 위해 나처럼 말과 행동을 했다면 나는 그와 친해지고 싶을지 생각해 봄으로써 나의 사회적 기술의 적절성을 평가해 볼 수 있다. 내가 친해지고 싶은 사람을 면밀히 살펴보고 그가 가진 기술들 중 내가 해볼 법한 것들을 시도해 보는 것도 좋다.


천국과 지옥은 내가 만드는 것이다. 부조리한 삶에서 중요한 것은 정답 여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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