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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병장수 Nov 05. 2023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_조세희

주어진 선택지 안에서 올바른 선택을 할 자유

길치인 나는 강남의 잘 정돈된 대로의 구성을 좋아한다. 계획도시이기에 가능한 직사각형이 만들어내는 예측가능하고 깔끔한 효율성이 좋았다. 이 책을 통해 인공적이고 거시적인 성과의 이면에서 고통받은 약자의 희생을 직면하였고, 고도경제성장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 도대체 우리는 왜 뭐든지 효율적으로 빨리빨리 하려고 하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소설은 고속 산업화 시대의 수혜자와 피해자, 그리고 그 중간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단편으로 구성되어 언뜻 보면 마치 각기 다른 이야기 같지만, 대한민국의 자랑으로 여겨졌던 고도경제성장이라는 거시적인 이념 아래서 크고 작게 연결되어 고통받는 사람들의 시대적 비극을 조망한 하나의 장편 소설이다. 한 단편 안에서 비중이 작은 인물이 다른 단편에서는 직접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거나, 작지만 커다란 나비효과를 일으키는 역할을 하는 등 개인의 비중이 상황이나 시점에 따라 급격히 달라진다. 어떤 표현들은 애매하고 불명확해 시적으로 느껴지고, 하나의 이야기 안에서 설명 없이 시점이나 화자가 갑자기 바뀌기도 한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집중해서 완독 하기 조금 혼란스러웠지만 결국 우리 삶에서도 상황이나 맥락은 예측 불가능하게 바뀌고, 중요하지 않다고 여긴 인물이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등 우리의 삶 속에서 마주치는 혼돈, 타인과의 미시적 연결성이 오히려 더 잘 표현된 것 같았다. 때문에 소설 속 인물들의 고통은 더욱 처절하게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극단적인 삶은 양 극단의 어느 쪽이든 불행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경제적 결핍은 직접적인 생존 문제와 연결되어 실존적 결핍에서 비롯된 분노감 때문에 불행하다. 반대로 과도한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온전한 힘으로 무언가를 이루어 낼 기회가 적어 소모적인 쾌락과 탐욕에 중독되어 인간성을 상실한 채 결국 허망감과 허무주의에 빠져 불행한 인생을 살게 되기 쉽다. 내게 주어진 어떤 조건들은 숙명적이어서 내가 어떤 환경에서 어떤 성별로 태어나는 것을 선택할 수는 없다. 비록 주어진 조건에 따라 선택지에 제한은 있겠지만, 결국 그 선택지 안에서 내가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의 자유는 언제나 개인에게 있다. 선택은 개인의 가치관에서 비롯되므로, 올바른 가치관이 삶을 주도한다. 사람은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가야 하는가?


갑자기 삶의 터전을 잃고, 직업을 잃고, 건강을 잃는 것은 억울한 일이다.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이에 대항하는 태도가 필요할 때도 있다. 실제로 이에 대항한 이들의 희생 덕분에 노동자에 대한 처우가 개선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개인의 삶을 파괴할 정도로 지켜내야 할 숭고한 가치는 없다. 파괴는 또 다른 파괴와 균열만을 낳을 뿐이다. 노동자들이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부조리한 대우를 포기했다면 대한민국의 고속경제발전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성실한 우리 민족은 결국 천천히 경제 발전을 이루어 냈을 거라 믿는다.


난장이 가족이 터무니없는 적은 보상금이라도 받고 산업화 도시를 떠나 살았으면 어땠을까? 경제력과 건강을 잃은 난장이가 절망감에 빠져 가족을 떠나고 싶다고 호소했을 때 온 가족이 함께 그곳을 떠나 함께 살기로 했다면 어땠을까? 살기 위해서 반드시 도시에 살수 밖에 없었을까? 우리가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가 그 근본적인 이유를 생각한다면, 굳이 그곳에 투쟁하듯 착취당하며 살 필요도, 자살할 필요도, 살인할 필요도 없었다. 사랑 없이 의무감만 있는 곳에서 사람은 결국 소모품이 될 뿐이다. 노동자가 대처 가능한 톱니바퀴라면, 효율적으로 빨리 돌아가는 톱니바퀴이기를 자처하는 것은 누구인가? 나를 고갈시키는 환경에 나를 방치하고 손상시키는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내 삶 속의 주도권은 언제나 나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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