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 시대가 주도하는 속도와 생산성에 적응하며 잃은 것
나는 워커홀릭이었다. 일 자체를 좋아하기도 했지 만 일을 더 잘하고 싶어서 주말에도 일을 하거나 일과 관련된 공부를 했고, 굳이 안 해도 되는 연구 실적을 쌓기도 했다.
생산성이 떨어질까 봐 아파서 누워있을 시간이 아까워서 약간의 아픈 조짐이 보이면 미리 고용량의 약을 먹었고, 잠에 쉽게 들 것 같지 않은 날은 수면제를 먹고 잤다. 한창 바쁠 때는 식사도 거르고 일하다가 꼬르륵 거리는 소리가 거슬리거나 체력이 떨어져서 집중이 잘 되지 않을 때에서 야 울며 겨자 먹기로 쓰레기 같은 가공식품으로 배를 채우고, 커피를 때려 붓거나, 때로는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기 위해 ADHD 약을 먹기도 했다. 그러다가 때때로 내가 왜 이렇게 사는지 모르겠을 때는 항우울제를 먹었다.
일에 대부분의 에너지를 쏟고 집에 돌아오면 친구를 만날 힘도, 책을 읽을 힘도, 건강한 식사를 만들어 먹을 힘도 남아있지 않아 외출복 차림으로 방바닥에 널브러져 떠오르는 고독감과 외로움에 잠식되지 않고자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끝없는 알고리즘으로 연결되는 가벼운 즐거움을 누렸고, 불필요한 물건들을 사서 쌓아두고, 그런 것들을 살 수 있는 나의 경제력에 감탄하다가 또 그것들을 살 수 있는 경제력을 유지하기 위해 무리해서 일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사는 내가 시대의 흐름에 도태되지 않고 잘 적응하면서 사는, 다윈이 말하는 환경 변화에 나를 맞추며 나가면서 적응적으로 사는 진화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10여 년을 살다 보니 직업적으로 유능해졌고, 돈도 잘 벌었지만 결국 번아웃이 왔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이 책을 통해서 내가 괴로웠던 것은 내가 적응하고자 했던 세상의 변화나 속도가 다윈이 자연선택설에서 말한 자연스러운 생태계의 흐름이 아닌, 산업화 시대가 유도하는 가속화와 생산성에 대한 압박 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또한 고도성장은 노동자의 착취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여러 방면에서 개인적인 삶을 무너뜨려 집중력을 빼앗고, 비만하게 만드는 소비문화를 확산시켜 결국은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있으며, 그로부터 얻는 이득은 특정 계층의 소수만이 과도하게 누리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저널리스트인 요한 하리는 어떻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집중력이 도둑맞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250명의 전문가와의 심층 인터뷰와 개인적 경험과 사유를 토대로 해당 주제에 대해 탐색하여, 개인의 집중력 문제에서 시작하여 이를 유발하는 보다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파해친다. 책의 말미에 근본적인 해결책까지 제시하는데 그의 모든 주장에 백 퍼센트 동의할 순 없지만 상당 부분 공감하였고, 내 개인적인 삶의 방향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결국 개인주의는 산업화 시대가 개인을 착취하는데 이용한 프레임인 것 같다. ‘너도 열심히 노력하면 우리처럼 부자가 될 수 있어. 쟤는 게을러서 저렇게 밖에 못 사는 거야, 넌 더 노력해 봐!’라는 현혹과 허상의 채찍질. 그런데 생각해 보면 왜 굳이 나를 갉아먹으면서까지 생산성에 집착하며 성장했어야 했는지 잘 모르겠다. 작가의 주장처럼 사람은 가상 속에서가 아닌 실제 삶을 살아가야 하고, 실제 삶은 개인의 건강한 생각과 쉼을 가능케 하는 건강한 생활 습관, 나와 연결된 사람들 그리고 아이들과 자연보호가 더 중요한 것인데 말이다.
이제 그만 성장의 늪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더 이상 지친 마음을 달래주던 가상의 세상에 들어갈 필요 없이, 개인의 삶을 회복할 수 있도록 일을 줄이고 건강을 회복하고 주변을 살펴보면서 진짜 현실의 인생을 살도록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