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삶을 바칠 쓸데없는 명분
26년간 7만 명이 이상이 사망한 아시아 사상 최장기 내전인 스리랑카 내전이 시작된 1983년 폭동 속에서 정부군, 반군, 외신에 이르는 모든 곳에서 필요한 사진을 찍는 사진작가, 도박꾼, 난잡한 게이인 말리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 후 일곱 개의 달이 뜨기 전에 자기 죽음의 비밀을 파헤치는 이야기이다.
스리랑카인인 작가 셰한 카루나틸라카는 사후 세계라는 판타지를 입혀 자국의 전쟁과 분열을 다루면서 인간 본성, 삶과 죽음에 대한 사유를 통해 인간 존재의 가장 근원적인 목적을 짚어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2022년 부커상을 수상했다. 스리랑카 현대사 자체도 복잡하고, 등장인물들의 이름도 낯선데, 사후 세계와 현실 세계가 혼합되어 몰입이 안 됐다. 보통 소설은 편견을 갖기 싫어서 사전 조사나 추천사를 읽지 않고 읽는 편이지만, 이 책은 도저히 그냥은 읽히지가 않아서 초반에 조금 읽다가 책을 내려놓고 스리랑카 내전과 포커에 대해서 공부를 하고 읽었고, 그러고 나니 몰입하기가 쉬워 1/3 이후부터는 하루 만에 완독 할 수 있었다.
이 책 덕분에 스리랑카가 인도 아래 있는 섬나라이고, 스리랑카 이전의 국호가 실론인 실론티의 나라이며, 대부분의 아름답고 자원이 풍부한 나라가 그렇듯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의 지배를 받다가 내전을 겪은 비운의 나라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단일 민족끼리도, 하물며 한 가족끼리도 매일 균열하는데 장기간의 식민지 생활로 피폐해진 각기 다른 언어와 종교를 가진 다문화가 하나로 통합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민족을 위한다는 것 같은 어떤 거시적인 명목은 언제나 민족을 최우선으로 처참하게 내팽개치는 것 같다. 거시적인 이념 속에서 개인은 언제 사라져도 아무렇지 않는 요소일 뿐이다.
창조주는 우리를 창조한 것으로 할 일을 다 했고, 개인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갈 자유를 얻었다. 그러나 삶은 도박처럼 확률과 우연이 지배하고 우리에게 대체 자유가 있나 의문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부조리를 직면하면 억울하고 원통해한다. 죽어서라도 되돌리고 싶을 정도로. 하지만 하는 수 없지 어쩌겠나? 삶이란 그런 것을. 말리는 죽은 후 사후 세계에서라도 자신이 남긴 사진이 세상을 바꿀거리고 기대하고 이를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다. 그렇다고 삶이 아무것도 아닌가? 허상을 쫓으며 무엇이 중요한지 모르고 살아갈 때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지만, 말리의 죽음 후 그와 연결된 사람들은 조금씩 변화한다.
확률과 우연이 지배하는 부조리한 세상을 사는 우리의 삶은 아무것도 아닌가? 작가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삶을 바칠 쓸데없는 명분을 찾아내야 한다. 그것조차 없다면 왜 굳이 숨을 쉬는가? 돌아보면, 일단 자기 자신의 얼굴을 보고, 눈의 색깔을 알아보고, 공기를 맛보고, 흙의 냄새를 맡고, 가장 청정한 지하수와 가장 더러운 우물물을 마셔본 다음에, 우리가 삶에 대해 할 수 있는 가장 친절한 말이 그것이기 때문이다. 삶은 결코 아무것도 아니지 않다.”
미친 듯이 일을 하고 퇴근하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장기간 매일 술을 마시다가 베르니케 뇌병증이 걸린 환자, 조현병으로 집 안에서 유투부만 보다가 피해망상이 심해져서 자신의 밥을 챙겨주려고 방에 들어온 어머니를 가혹하게 폭행해서 폐쇄 병동에 입원한 환자, 취업 실패로 우울증이 심해져서 집 안에서 번개탄을 피웠다가 저산소성뇌손상을 입은 환자들이 살아남아 내게 말하는 것들은 언제나 결국 “내가 진짜 원하는 건 이게 아니었는데”였다. 내 삶을 바칠 쓸데없는 명분은 결국 나와 연결된 사람들을 지금 여기서 제대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