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대한 진실은 마지막에 알게 된다
맨부커상 후보에만 세 번 올랐던 줄리언 반스가 육십 대 중반에 이른 2011년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맨부커상을 수상하게 해 준 작품. 옥스퍼드 영사전을 편찬한 저자답게 풍부한 어휘와 간결한 문체로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어 가독성이 높다. 그러나 짧은 분량임에도 삶에 대한 이해를 개인 기억의 왜곡의 관점에서 깊이 있게 성찰한 내용이라 읽는 동안 여러 번 책을 내려놓고 오랜 시간 동안 곱씹으며 읽게 되었다.
우리는 시간 속을 살고, 시간 속에서 여러 크고 작은 사건들이 일어나며, 개인은 자신만의 독특한 이해의틀을 통해 주관적으로 사건을 지각하고 이해하며 가치관을 형성해 살아간다(혹은 아무 생각 없이 남이 해석해 주는 대로 결론만 기억하는, 혹은 그마저도 하지 않는, 삶에 대한 가치관 없는 삶, 생에 멱살잡혀끌려가는 삶을 사는 사람도 많다).
어쨌든 사건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개인이 이용하는 프레임은 어떤 지각적 특성을 가졌는지, 해석하는 당시 개인의 정서 상태가 어떤지에 따라 달라지고, 이 과정에서 사건 자체를 완전히 객관적으로 지각하고 이해는 것은 불가능하다. 설령 지각과 이해가 객관적인 진실에 매우 가까웠다고 할지라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기억의 왜곡은 매우 흔히 나타난다. 이처럼 사적이고 취약한 기억에 의존해 형성한 개인의 가치관은 어쩔 수 없이 주관적 프레임 안에서 얄팍할 수밖에 없음을 인식하고 상황이나 맥락에 따라 적절히 변경할 수 있는 융통성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결코 줏대 없는 삶이라고 폄하될 수 없다.
원칙이 행동을 이끌어야 하는 관념에 근거해 사유를 인생에 적용하면서 능동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은 중요하지만, 절대적이고 완고한 가치관을 추구하는 개인은 결국 우연과 혼란이 지배하는 생 속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다. 완전무결한 개인도, 인생도 존재할 수 없다. 완결무결함의 가치는 시대와 맥락, 상황에 따라 변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평생 상처 주지 않고, 상처받지 않고 무결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결국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는 인간은 이 상처를 어떻게 다루며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선택과 그 책임을 지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역사는 승자들의 거짓말이 아니라, 대부분 승자도 패자도 아닌, 살아남은 사람들의 회고라고 말하는 노년의 주인공 토니의 진술처럼, 우리는 살면서 좌충우돌하고 대책 없이 삶과 맞닥뜨리면서 실수도 하고 상처도 받아가면서 나만의 인생의 토대를 단순히 늘려가는게 아니라 덧칠하고 교정해 나가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인생이 끝났을 때 나를 기억하는, 살아남은 사람들의 회고가 결국 나라는 사람에 대한 가장 객관적인 정의에 가깝지 않나 생각한다. 절대적이거나 물리적인 삶에 대한 기준을갖기 보다는, 나는 사후에 내게 소중한 남은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생각하고 그에맞게 융통성 있는 태도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