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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병장수 Dec 28. 2023

책상은 책상이다_페터 빅셀

내 인생은 내 인생이다

스위스 작가의 페터 빅셀의 어른을 위한 동화 같은 단편집. 7개의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모두 고집이 세고 편협한 중장년 남성으로 소통 및 정서 교류에 특히 취약한 중장년 남성들이 산업화 시대 속에서 소외되고 고립되어 결국 인간성까지 상실되는 과정을 극단적인 사례로 보여준다. 간결하고 날카롭게 인생에서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고, 자의로 혹은 타의로 사회적으로 고립될 때 인간성을 상실한다. 개인의 인간성은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정의되는데,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때 개인은 어떤 태도로 살아야 소외되거나 고립되지 않을까?


은퇴 후 생산성을 상실한 중장년층들이 자신의 자존감의 근원이던 직업을 잃고 정체성을 상실하고 관계로부터 단절된 삶을 살다가 우울증에 걸리는 경우는 매우 흔하다. 여성보다 감정 표현이 서툰 남성은 돈을 벌어오는 행위 자체로 자신의 존재감을 정의하고자 하기에 이를 잃어버리게 될 때 정체감을 잃었다고 여긴다. 또한 주부였던 여성의 경우에는 평생 아이 양육에 자신의 인생을 불사르다가 자녀가 독립한 이후에도 독립한 자녀의 삶에 침입하고 분란이 생기면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하며 화병에 걸리기도 한다. 이처럼 하나의 단일한 가치를 인생에서 유일무이하고 절대적인 책임과 의무로 여기고, 이 행위의 목적인 ‘대상’이 내가 아닌 타인(나의 가족, 연인, 친구) 일 때, 나의 노력이 인정받지 못했다 여겨지면 정서적으로 무너지게 된다. 나의 존재를 증명하는 수단이 단 하나인 것도 문제지만, 내 인생이 타인을 위한 맹목적인 희생이 되면, 보상받고 싶어지고, 그것이 문제의 씨앗이 된다.


생산성 상실이 내 존재의 가치 여부를 판단하지 않게 하고, 나를 정의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여기던 어떤 것(직업, 외모, 명성)을 상실했을 때 좌절하지 않게 하려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야 할까?


우리는 모두 삶 속에서 크고 작은 선택의 기로에 서고, 선택의 결과를 책임지는 과정이 결국 개인의 삶을 이룬다.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나에게 주어진 수많은 선택은 결코 남을 위해서, 남에게 받아들여지기 위해서, 혹은 남을 조종하기 위해서가 아니어야 한다. 나를 위해서, 내가 추구하는 나의 삶의 방향성에 적절한가에 근거해야 한다. 이때 나는 “나만”생각하는 이기적인 차원이 아닌 선택을 하는 주체성의 차원에서여야 한다.


나는 가장으로서 우리 가족을 위해 성실히 일하기를 선택했다. 가장으로서 대접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공동체 일원으로서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다하기로 선택했기에, 내가 벌어온 돈으로 우리 가족들이 안락한 공간에서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도록 기여한 나의 행위 자체로 스스로 만족하고 보상받아야 한다. 같은 원리로 나는 엄마로서 내 아이를 하나의 독립된 성인으로 키워내기를 선택했다면, 아이가 건강하게 잘 자라서 자신의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모습 그 자체로 만족하고 보상받아야 한다. 내가 살아온 인생은 내 스스로의 선택과 책임을 통해 스스로 보상받도록 해야지, 타인에게 인정받기를 바라거나 보상을 바라면 억울해지고, 화가 나거나 우울하거나 삶이 무의미하다고 느껴지게 된다.


사랑을 받으려고 하지 않고, 사랑하는 것.

주어진 대로 살지 않고, 주체성을 갖고 살아가는 것.

각자의 손에 쥐어진 소소한 선택권이 결국 자신의 손에 쥐어진 운명이다. 우리는 자신의 운명을 손이 쥐고 나의 인생을 창조해 나가는 것이다. 그런 삶의

태도가 내 생을 나에게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어준다. 불행의 씨앗은 타인에게 내 노력의 보상을 바라는데에서 싹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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