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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병장수 Oct 03. 2024

오후 네시_아멜리 노통브

타인을 통한 나의 발견

나는 비교적 평탄한 삶을 살았지만 오랜 시간 다양한 환자들의 삶을 간접적으로 관찰하면서 스스로를 꽤나 성숙하고 강인한 사람이라고 착각했었다. 어제까지는… 예상치 않게 갑자기 직면한 무례한 거구의 백인 커플 사이에 끼어 영어로 폭격기처럼 쏟아내는 감정쓰레기를 맞으면서 참으로 오랜만에 그야말로 멘탈이 붕괴되는 경험을 했다. 상황이 정리된 후 객관적으로 그때 상황과 내가 느낀 감정에 대해 되돌아보니 나는 성숙했던 것이 아니라 다만 무탈했었고, 강한 게 아니라 그동안 익숙한 환경 안에서 교양 있는 사람들을 교양 있게 상대하면서 살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이렇듯 사람이 자기에 대해 잘 안다고 여기는 것은 다만 익숙한 환경 속에서 구조화된 나의 일부일 뿐이다. 결국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 누구를 맞닥뜨리게 되는지에 따라, 그리고 그 상황과 사람을 대하는 나를 관찰하면서 비로소 내가 알지 못했던 낯선 나를 발견하여 어제와는 다른 내가 된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변화에 노출되므로 죽기 전까지는 내가 어떤 사람이라고 확정할 수 없다.


이 책은 평생 고등학교에서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가르치다 퇴임한 노인이 아내와 함께 숲 속의 집을 구매하여 조용히 여생을 보내고자 하였지만 매일 오후 네시에 집에 방문하는 불청객을 통해 노년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진지하게 자아를 돌아보면서,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성찰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벨기에인지만 외교관인 아버지 덕분에 일본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작가의 작품이라 그런지 일본 스릴러 소설처럼 간결한 대화 형식의 문체에 스토리도 흥미진진하고 빠르게 진행된다. 그러나 어떤 태도로 무엇을 중시하며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큰 줄기로 하여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심술을 부리듯 자기 집에 침입해 공허 속에 가득한 악의 가스를 내뿜어 자기 부부의 삶이 점점 파괴되고 있음에도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핑계로 비겁하게 자신과 사랑하는 아내의 궁극적인 행복과 존엄을 저버린 것. 인간은 누구나 자기 삶에 크고 작은 문제가 있지만 그것에 질식되도록 허용하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결국 자기 자신이라는 것. 삶이 어떤 형태이든 즐거움을 느끼는 한 삶은 공허하지 않다는 것. 삶 속에서 아무런 즐거움도 기쁨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불평으로 가득 찬 허무와 공허로 채워진 지옥 속에서 산다는 것. 공허로 이루어진 삶을 사는 사람은 자발적으로 삶의 기쁨을 포기하고는 자신의 고통을 누군가에게 전가해야 할 절실한 필요를 느끼고 타인과 자신의 삶을 모두 파괴시킨다는 것.


안전하고 예측 가능한 온실의 세상 속에서 성장은 한계가 있다. 식물의 열매는 깜깜한 밤에 자라고 사람도 어두운 시간을 통해 성장한다. 하지만 어둠은 너무 두려워서 성장 따위는 아무래도 좋으니 어떤 일들은 겪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지듯 살아가면서 어둠이나 고난을 내가 선택적으로 피할 수는 없다. 어찌 보면 결핍은 과잉보다, 실패는 성공보다, 고난은 안정보다 더 좋은 인생의 스승이다. 아무런 결핍, 실패, 고난을 겪지 않은 사람은 자기 자신의 무한한 한계를 알지 못하고 편협한 인생을 살다 죽을 수밖에 없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 삶의 어느 시점에 어떤 방식으로든 스르르 파고들고 비집고 침투해 들어와 나를 휘젓는 결핍, 실패, 고난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삶에서 누릴 수 있는 쾌락, 기쁨, 즐거움을 누리며 삶을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


숲의 아름다움을 보면서,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아리아를 들으면서, 월하향의 향기를 맡으면서, 먹거나 마시면서, 애무를 하거나 받으면서 즐거움을 느끼며 살아야 한다. 자연과 예술 작품을 보면서 감동받고, 욕구를 느끼고 채우면서 감각을 통해 육신의 생이 내게 허락한 삶의 기쁨을 최대한 누리며 삶을 사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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