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살 수 있는 대로 자기 역량에 맞는 삶을 살아낸다
2019년 제117회 공쿠르상을 수상한 프랑스 국민작가 장폴 뒤부아의 최고작. 프랑스에서 캐나다로 이주한 뒤, 렉셀시오르 아파트에서 이십육 년간 관리인으로 근무하다 우연한 사건으로 교도소에 수감된 한 남자의 수감 생활의 이야기와 수감 이전 삶의 이야기를 교차적으로 보여주면서 세상과 나에 대한 편견을 깨뜨리는 따뜻한 위안을 준다.
과거에는 혈액형, 요즘에는 MBTI가 유행하는 것은 나를 포함하여 복잡한 인간을 단순하고 명료하게 이해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하지만 키 100cm인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보는 세상과 키 180cm인 성인의 눈에서 보이는 세계가 다르듯, 한 명의 개인이라도 신체 성장과 노화에 따라 세상을 다르게 지각한다. 그렇기에 한 사람의 전생애를 설명하는 단 하나의 절대적이고 단일한 특성은 없다. 다만 특정 시점에 놓인 나를 누가 어떤 잣대로 평가하느냐에 따라서 우리는 다르게 정의된다.
주인공은 국적도 성향도 다른 부모가 주는 다양한 영향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며 성장한다. 국경과 언어를 초월하는 사랑을 했음에도 결국 다름을 수용하지 못해 의무감과 책임감으로 버티다가 허망한 삶을 살다 죽은 부모의 삶을 있는 그대로 수용한다. 적지 않은 환자들이 성인기에 경험하는 심리적인 어려움의 근원적 이유를 과거 부모로부터 온전히 수용받고 사랑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여기며 고통스러워한다. 그러나 평생의 삶의 과정 동안 어떻게 일관적으로 좋은 삶을 살아낼 수 있겠는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부모들은 각자 자기 나름의 사랑과 정성을 들여 아이를 양육했지만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몇 가지 실수나 상처를 아이에게 주었을 수도 있다. 몇 가지 부정적인 이벤트로 성인기에 이르기까지 양육을 위해 희생한 부모의 모든 노력과 희생이 평가절하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때 내게 상처 준 부모의 나이가 나보다 어리거나 몇 살 차이가 나지 않는데 그들이 삶에서 감내해 온 책임감의 무게를 고려하면 불쌍한 마음이 든다. 인간관계에서 서로 자신이 상처받은 부분만 크게 느끼고 아파하느라 상대방의 노력이나 희생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매일매일 문 앞에 쌓이는 모래를 쓸어내면서 버티는 시간이 길어지면 결국 인내심과 애정은 부식되고 관계도, 공들인 일도 해지고 갈라지고 부서진다.
아등바등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어떤 가치를 지키느라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 주고 상처받고 관계가 파탄 났지만 결국 그 소중한 것들도 나의 실수로 혹은 변화의 흐름에 따라 변질되고 사라지게 된다. 영원한 건 없는 고독과 불확실성이 우리의 앞 뒤에 도사리고 있는데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가야 할까?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들의 세상에서 서로 호의를 주고받으며, 생의 허무주의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한걸음 한걸음 악착같이 발을 빼내 옮겨야 한다. 저열한 문제에 빠져 미적거리기엔 인생이 너무 짧고 귀하다는 사실을 매 순간 의식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내 노력과 상관없이 나를 덮치는 불행 속에서 버텨낼 수 있도록, 소수의 사람들과 관계 안에서 각자의 황폐해진 내면을 신뢰와 사랑으로 달래고 진정시키고 위로해야 한다.
그래야만 하나? 그래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