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한 개인으로 살 것인가 공존하는 인간으로 살 것인가
기혼자 친구의 하소연을 들었다: 그녀를 사랑해서 데이트 후 헤어지는 것이 아쉬웠다. 각자의 분리된 생활을 하나로 통합해 우리의 삶을 살아가자며 결혼했다. 그런데 아내가 결혼하자마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서 TV만 본다. 그래, 너 하나 먹여 살리지 못할까 싶었지만 시간은 흘러 어느덧 7년 차. 연봉은 그대로인데 생활 물가와 대출 이자는 점점 늘어가고, 원리금 상환까지 해야 하니 외벌이로는 점점 부담이 된다. 아내에게 넌지시 재취업을 권하자 ‘네가 술담배를 끊으면 되겠네’라고 한다. 나는 돈 벌어오는 기계, 비인격적 도구가 된 기분이 든다. 억울하다. 인간이 싫어졌지만 인간을 포기할 수 없는 내가 밉다. 그래, 이제부터 나도 내가 번 돈을 나에게 펑펑 쓰겠다. 좋아하는 유료 동호회에 가입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웃고 떠들며 비싼 음식과 양주를 먹고 마셨다. 그 순간은 즐거웠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왜 공허할까?
관계 문제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다. 그러다가 자기에게 지나치게 몰입하는 자기애적 방어를 한다. 남 때문에 괴로웠는데 나만을 위한 삶을 살아도 공허하다. 왜 그럴까? 관계 욕구는 생존에 필수적인 먹고 자고 싸는 것만큼 중요한 기본적 욕구이기 때문이다. 루마니아 내전으로 집단 고아가 발생했을 때 아기들에게 시간 단위로 밥을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었지만 접촉이 제공되지 않자 6개월 이내에 대부분 사망했고 살아남은 아기들도 정신적인 문제를 경험했다. 대화가 안 되는 아기에게 접촉이 곧 관계이고, 관계 형성은 이토록 필수적이다. 근본적인 인간의 욕구이므로 인간에게 상처받으면서도 인간을 단념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노벨문학상과 노벨평화상 후부로 지명되고 20세기 가장 위대한 종교 사상가로 손꼽히는 마르틴 부버는 이 책을 통해 관계없이 ‘나’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나’는 세상을 경험하는 방식에 따라 '나와 너(Ich-Du)‘의 관계와 '나와 그것(Ich-Es)’의 관계를 통해 존재하며, 참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나와 너'의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인간으로서의 가치와 존엄성을 잃어버리는 현대의 비극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참된 관계와 대화가 상실되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하며 만남과 대화야말로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가장 근원적인 모습이라고 말한다.
관계를 맺는 한 방식일 뿐인 사랑은 내 안에 있거나 그녀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와 그녀 ‘사이’에 있는 것이다. 실재하는 두 인간, 지금 여기 실존하는 나와 너, 우리의 생활과 우리의 세계 속에서 두 인격의 상호적 관계 속에서 작용하는 것이다. 사랑은 상대방을 도구화하는 것, 즉 ‘그것’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너’에 대한 나의 책임을 의미하며 두 인격 사이에 있는 것이므로 쌍방으로 노력해야 유지되는 것이다. 영원하지만 무상한 것이기 때문에 상호 관계에서 한쪽만 내어주면 한쪽은 파멸당하게 되므로 희생과 모험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현재를 산다는 것은 ‘나와 너’의 관계를 통해 기쁨과 슬픔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 생계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는 않지만, 실현되기도 하고 실현되지 않기도 한 여러 ’나-너‘관계 경험이 축적되어 ‘나’라는 인격의 틀이 형성되어 삶의 방향이나 의미를 만들어가 참다운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한편 우리는 ‘그것’ 없이 살 수 없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우리를 받쳐주는 것은 나의 외모, 학력, 재산, 경력, 취향과 같은 ‘그것’이라는 믿음직한 현실성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만의 욕구 충족, 경험에 몰입하는 방식은 ‘나-그것’ 관계로 개인의 인생을 사는 것이 이득이 아닌가? 그러나 내가 하나의 인격이 아닌 개인으로서 보이고 평가받고 인정받는 부분들에 집중하는 삶을 사는 것은 결국 나 스스로를 소비재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가치 평가는 주관적인 인식이기 때문에 자기 환상과 자아도취에 지나지 않게 되고, 허무한 공허와 고립감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사람은 ‘그것’ 없이는 살 수 없지만 ‘그것만’을 사는 자는 참다운 삶을 산다고 볼 수 없다.
정신과 세계는 내 안이나 내 밖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나와, 나의 현실의 세상과, 나의 결단과, 나의 노동과, 나의 봉사와 관계하고 또 이들에 의존하면서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방구석에서 백날 탐색해 봤자 그 안에 나는 없다. 푸념하며 술 마신다고 삶의 의미가 유레카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결국 내가 누구인지 알려면 나에게 주어진 이 현실의 조건을 엄숙한 마음으로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단 하나밖에 없는 삶에 주어진 이 현실의 삶만큼 진리의 영역에 가까이 서 있는 것은 없다. 현실의 삶을 살아내며 몸소 그 진리의 실현을 위해 애써야 한다. 의무나 당위에서가 아니라 그렇게 할 수 있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어서 하는 것일 뿐이다. 그것이 지금 여기 나에게 주어진 내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