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신념대로 살았고 본인이 만족한다면 그것도 괜찮다
나의 어머니는 격동의 시대에 가난한 집안의 장녀로 태어났고, 자신도 부모의 사랑과 보살핌이 필요한 시기에 돈을 버느라 바쁜 부모를 대신하여 오빠들과 동생들의 엄마 역할을 하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리고 별다른 사회 경험 없이 결혼한 후에는 자녀들을 낳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엄마 역할을 수행해 냈다. 자신의 정체성이 곧 엄마인 나의 어머니로부터 나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많은 사랑과 돌봄을 받으며 자랐다. 나도 어머니를 사랑했기에 그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고, 어머니가 내게 그랬듯 내가 원하고 필요한 것보다 어머니가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충족시켜 주는데 몰입하며 살아 어머니의 자랑스러운 딸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어머니에게 먹히고, 어머니는 나에게 먹힌 삶을 너무 오래 살았던 나는 남들보다 조금 늦은 나이에 차츰 독립성을 회복하면서 ‘나는 엄마가 아니다, 엄마는 제발 엄마 인생을 살라 ‘고 애원했지만 ‘너희들이 내 인생이야‘라고 말하는 엄마를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은 내 숨을 막히게 했다. 장기간 나와 하나가 되어버린 어머니에게 갑자기 ‘내 인생에서 제발 나가 달라’고 하는 것은 어쩌면 어머니에게 ‘엄마 머리는 사실 내 머리니까 그걸 자르고 내 몸에서 나가서 엄마의 머리를 만들어내’라는 요구만큼이니 폭력적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남아 있는 나날은 2017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가 1989년 발표한 소설로 그 해에 부커상을 받게 된 작품인데 뜬금없게도 1-2차 세계대전의 전간기 시대의 영국 집사장의 회고록을 읽으며 나의 어머니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책은 품위 있는 집사장으로서 30년 넘게 모셔온 영국 귀족인 달링턴 경을 자신의 세상으로 여기고 살아온 한 남자 스티븐스가 새 주인의 호의로 받은 일주일간의 휴일 동안 생애 최초로 로드트립을 하며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는 내용으로 독자에게 넌지시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일과 개인적인 삶을 분리할 수 없는 환경에서 일과 분리된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은 어렵다. 집사장은 집이 일터이므로 일과 삶을 분리할 수 없고, 큰 일을 도모하느라 바쁜 주인의 ‘수족‘이 되어야 한다. 사사로워 보이지만 결코 하찮지 않은 일을 프로페셔널하게 처리하는 ‘위대한 집사‘에게 독립된 개인으로서 주체성은 그저 방해물이 된다. 주체적으로 생각하지 않아야 하므로, 존경하는 달링턴 경이 나치에 경도되어 오판을 하고 있음을 무시하고 그의 부당한 지시를 무조건 복종하고, 일에 방해가 되므로 한 집에서 눈을 뜨고 사망한 부친의 눈을 감겨드리는 것조차 남에게 맡기고, 자신이 사랑받고 있고 사랑하고 있다는 소중한 감정조차 차단한 채 그녀를 떠나게 내버려 둔다. 일하는 것이 삶 전체가 되어, 나의 정체성의 일부여야 하는 일에 오히려 내 정체성이 전부 먹혀버린 인생을 살아온 그는 인생의 황혼 녘에 비로소 삶의 가치와 잃어버린 사랑에 대한 허망함과 애잔함을 깨닫는다. 그러나 이미 되돌릴 수 없는 과거는 너무 고통스러우니 계속해서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고 합리화하며 새 주인의 좋은 집사장이 되기 위한 노력을 다짐하는 모습으로 끝나는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작품 해설에서 스티븐스가 위대한 집사의 역할을 수행하는 모습을 두고 한나 아렌트가 전범 아이히만이 관성처럼 명령에 복종하고 근면하게 직무를 수행한 평범한 인간이었던 것과 같은 차원으로 설명하는 부분은 지나치다고 느꼈다. 옳은 일을 한다고 믿는 주인의 판단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성실하게 일한 것은 맞지만 스티븐스는 아이히만처럼 타인을 죽이는 행위에 가담하지 않았고 그저 자기 개인의 정체성만을 죽였을 뿐이지 않나? 격동의 시대에 자신의 삶을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모르고 주어진 삶을 성실히 살아낸 사람을 비난할 수 없다. 막연하게 삶에 대한 회한은 느끼지만 변화된 삶을 수용할 여력이 없어 익숙하고 편한 삶을 살고자 하는 노인에게, 이것이 내 몫의 삶이라고 받아들인 이에게 왜 당신은 주체적으로 당신의 삶을 살지 못하냐고 비난할 수 없다.
책의 말미에 스티븐스는 관대한 새 주인이 좋아하는 농담을 서로 주고받는 경험을 통해 그가 단지 위대한 집사가 되기 위해서만이 아닌 진짜 인간적인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는, 하루 중 가장 좋은 때인 저녁을 누릴 수 있기를 기대하듯, 엄마 역할 밖에는 정체성이 없는 가엾은 나의 어머니에게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자신의 취향에 좀 더 몰입하도록 돕고, 그것을 공유하는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 사회적으로 연결됨을 경험하고, 엄마 역할 밖에서 한 개인으로서 웃고 즐기는 시간을 갖도록 돕는 것이 나의 역할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