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쓰기
“인간이 무엇으로 인간을 알아보는지, 난 잘 모르겠다”
《모든 저녁이 저물 때》, 예니 에르펜베크, buvif 글방
2023년 11월의 마지막 수요일 여섯 글과 일곱 말이
거미줄로 엉긴 세계의 끝에서 이 글귀를 만났다
— 만 일주일의 책 읽기를 한 글에 줄여 보자
《프랑켄슈타인》
정리해고로 내 손에 옮겨 붙은 책
박사의 무책임한 호기심이 낳은 생
사체를 이어붙인 몸에 담긴 정신을
증명받지 못해 부리는 지독한 투정기
— 인간이 무엇으로 인간을 인정하는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난.쏘.공〉에 실린 문장은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의 이유로 불행하다”
《안나 카레리나》의 첫 문장만큼 무거운 진리
— 인간이 무엇으로 인간을 이해하는지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기지촌 활동가가 등장하는 수록작 〈몫〉
96학번의 회고록에서 자신의 얼굴을 발견
《아메리카 타운 왕언니 죽기 오분 전까지
악을 쓰다》를 읽고 썼던 팀 보고서를 회상
— 인간이 무엇으로 인간을 기만하는지
《프롤레타리아의 밤》
어설픈 공감을 시도하다 찔려서 인용
“시인의 거짓은 프롤레타리아들의 슬픔
에 무지하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알지
도 못하면서 그 슬픔을 말한다는 데 있다”
— 인간이 무엇으로 인간을 증언하는지
거미줄로 엉긴 세계에서 부채감을 더는 손쉬운 방법
2022년 2월의 마지막 목요일 소년과 늙은 여자의
총기 사용법 연습 장면을 떠올리며 편리한 시를 썼던가
‘난 잘 모르겠다, 인간이 무엇으로 인간을 위할 수 있는지’
- 명시되지 않은 참고 문헌 -
윤동주(1942), 〈쉽게 씌어진 시〉.
윤동주(1942), 〈참회록〉.
황동규(1978), 〈조그만 사랑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