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책이 가득한 공간에 가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도서관이라든가 서점, 북카페 같은 공간이죠.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책순이나 책돌이도 많이 있을 듯합니다. 문제는 기분이 좋기만 하진 않다는 겁니다. 아쉬움도 한가득 품게 되거든요. 마음에 드는 모든 책을 들고 갈 수 없다니! 세상에 이렇게 흥미로운 책이 많은데, 읽는 속도는 몹시 느려서, 개미가 공룡 걸음 따라가는 수준이라니! 절망스럽습니다.
‘아, 이것도 읽고 싶고… 저것도 읽고 싶고… 저 책은 사고 싶고… 그렇지만 집에 있는 책이… 읽고 있는 시리즈가… 근데 이 책은 지금 안 사면 까먹을 것 같은데? 당장 너무 끌린단 말이야….’
고민에 빠져 만지작거리고, 다음을 기약하며 휴대 전화 카메라에 담기도 합니다. 특히 ‘집에 아직 못, 또는 안 읽은 책이 있다.’는 사실 때문에 망설입니다. 책을 놓아 둘 공간이 부족하다는 점, 많은 책은 이사 시 큰 짐이라 부담스럽다는 점도 문제지요. 그나마 요즘에는 전자책이 나와서 공간의 한계는 극복할 수 있네요. 사 두고 읽지 않은 ‘책 원혼들’이 보내는 전파를 무시할 수 있다면요. 들리시나요? “날 읽어 줘… 언제 읽을 거야? 나 잊었어?” 물론, 금전적 여유도 있어야겠죠.
도서관에서도 계속 고민합니다. 끌리는 책을 모두 빌릴 수 없으니까요. 만약 10권이 눈에 들어왔지만 대출 가능 권수가 5권이라면? 매력적인 후보 10권 중 5권을 탈락시켜야 합니다. 이유는 가지각색입니다. 들고 가기 너무 큼, 2주 안에 읽기엔 분량이 너무 긺, 덜 끌림…. 정 안 되면 토너먼트를 시작합니다. 한 권씩 들어 보고 표지, 제목, 소개글, 서문 등을 살피며 견준 뒤, 상대적으로 ‘지금의 나’에게 덜 매력적인 책을 탈락시키죠.
집에 사 둔 책이 있어도, 책장에 꽂힌 책을 다시 읽고 싶어도, 빌려 온 책이 있어도, 서점과 도서관에 또 가고 싶은 이유가 궁금합니다. ‘설렘’이란 단어가 떠오르네요. 새로운 책을 만나고 싶은 설렘이 저를 움직입니다. 모험과 낯선 사상, 잘 모르는 누군가의 인생이, 생각의 경계를 허물어뜨리고 저를 날아오르게 하길 바랍니다. 여기까지 거창하게 말했지만 사실 소유욕도 한몫합니다. 책을 구매하면, 구김 없이 반듯한 종이와 바램 없는 색상의 ‘새 책’ 한 권을 점유했다는 기쁨이 따라오거든요. 도서관 책은 밑줄을 긋거나 책 귀퉁이를 접어서는 안 되지만, 적어도 2주 동안은 제 소유니 만족스럽습니다. 한시적 구매지요. ‘막상 읽어 보니 좀 별로.’같이 실패해도 대여료가 무료니까 원통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제 옆에는 책이 가득 담긴 수납함이 있습니다. 읽고 있는 책을 여기 모아 두기 때문입니다. 키르케고르의 절망 수업, 기분 리셋, 이선 프롬, 혼불 1권, 좁은 문, 태백산맥 7권, 어느 날 미래가 도착했다, 모 이야기, 시학, 불안의 개념. 도합 열 권이군요. 사 둔 책은 몰라도, 빌린 책들은 반납일까지 다 읽을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네… 그래서 구입한 도서는 독서 우선순위에서 계속 밀리네요.
정말 다행히도, 며칠 전 도서관 화장실 앞에서 깨달은 생각 덕분에 ‘이거 다 읽어야 해!’ 같은 강박에 시달리진 않습니다. 절에서 괜히 화장실을 해우소(근심을 푸는 곳)라고 한 게 아니네요. 화장실 가는 길, 화장실 안, 그냥 화장실 인근;; 에서 ‘유레카!’를 외치게 될 때가 많거든요.
‘독서도 사람 간의 인연과 비슷하지 않을까?’
문득 떠오른 생각입니다. 독서는 글 쓴 사람과 읽는 사람의 만남이고 대화지요. ‘세상 모든 사람을 사귈 수 없듯, 세상에 아무리 좋은 책이 많아도 다 읽을 수는 없겠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베스트셀러나 신간을 따라잡지 못해도, 추천 도서 도장 깨기를 못해도 상관없겠구나. 지금 읽지 않는 바람에 아예 책의 존재조차 까먹거나, 읽은 내용을 많이 잊더라도 괜찮겠구나. 인연대로 만나고, 발견하고, 읽고, 남고, 또 잊히겠지. 그러다 인연이 닿으면 다시 보겠지.
인연이 아닌데 억지로 붙들고 있으면 관계가 힘들 듯, 독서도 언제 읽느냐가 중요합니다. 같은 책도 어느 시기에 읽느냐에 따라 집중도와 감상의 폭이 달라집니다. 지금의 내가 필요로 하는 말을 해 주고, 바라는 장소로 데려가 주는 책이 ‘인생 책’ 반열에 오르겠죠.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는데 갑작스레 치고 들어와 뒤흔드는 책도 있으니까요. (근데 그것도 따지고 보면, 스스로 인지는 못했어도 뒤흔들리고 싶었던 시기일지도?)
어쩌면 이 생각도 지금의 저라서 할 수 있는 생각일지 모릅니다. 시간이 흐르면 독서관이 바뀔 수도 있죠. 어려워도 무조건 읽어야 해! 이 책은 반드시 봐야지! 같이요. (아, 사실 거의 한평생을 그 생각으로 살았군요.) 그렇다면 이 글도, 지금이기에 쓸 수 있는 글인 듯하네요. 그래도 변하지 않는 무언가에 대해 말해보며 끝을 맺고 싶습니다. 책도, 삶도, 이야기도 모두 소중하다. 그것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믿고 싶어요. 읽고 쓰는 사람은 계속 존재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