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을 계속하는 용기

서글, ‘그리는 아이’에서 ‘계속 그리는 사람’으로

by 이솔지

서글이는 그림을 그리는 아이였다. 시간이 날 때마다 그림을 그렸다. 때로는 학교에서 선생님이 수업하고 있는 동안에도, 연습장을 꺼내 놓고 자기만의 낙원으로 빠져 버리곤 했다. 귀엽게 봐주고 넘어가는 선생님도 있었지만, 괘씸하게 보고, 등짝을 한 대 후려치는 선생님도 있었다.

한 번은, 연습장을 뺏긴 적도 있다.

또 한 번은, 모의고사 시험지 뒷면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그러지 말라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다.

서글은, 자고 있는 애들도 있는데 그림 그리는 일이 왜 문제가 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다음에는 큰 그림이 아니라 손톱 만한 작은 그림을 그렸다고 했다.

그리기를 포기하지 않는 서글이가, 난 부럽고 좋았다.

‘언니.’

언젠가 서글이가 말했다.

‘내가 정말 화가가 될 수 있을까?’

‘그럼. 그렇게 열심히 그리는데 뭐가 걱정이야?’

‘열심히 그려서 걱정이야.’

서글이 대답했다. 왜 그런지, 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서글픈 눈을 하고, 서글이는, 다시 자기 방으로 가서 그림을 그렸다. 지금은 그 눈의 의미를 조금 알 것 같다. 열심히 해도 잘되지 않아서가 아니었을까.

그림 그리는 아이었던 서글이는 여전히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다. 난 당연히 서글이가 화가가 될 줄 알았는데, 아직 이렇다 할 개인전도 열지 못했다.

화가들의 세계를, 나는 잘 모른다. 그래도 서글이를 응원한다.

자매라서가 아니다.

서글이가 계속, 그림을 그려왔기 때문이다. 그림에 쏟아 온 서글의 그 모든 시간을 응원한다. 이건 마치, 냄비에 넣은 달걀이 끓는 물속에서 보글보글 투둥투둥 소리를 내다가, 마침내 삶은 달걀이 되어, 껍질까지 벗겨진 후, 내 입안에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마음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이번에도 서글이는 공모전에서 탈락했고, 내가 몰래 펼쳐 본 서글이의 일기장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그림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이상한 소리였다. 그림이 뭔지 모르겠다니. 그렇게 매일 그림을 그렸으면서, 어떻게 모를 수가 있지?

내게는 서글이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의문이 싹텄다.

‘화가란 뭐지?’

그림 화 자에, 전문가 혹은 정통한 사람이란 의미의 가. 정통하다는 말은, 어떤 사물을 깊고 자세하게 알다라는 의미인데.

왜 서글이가 자기를 화가라고 생각하지 못하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스물일곱 해를 꼬박 그림에 바쳐왔다면 충분히 그림 그리기에 정통한 사람 아닐까.

난 그보다 적은 오 년을 했어도 엑셀에 정통한데 말이야. 난 엑셀가 아닐까?

그런 말을, 서글이에게 한 적 있다.

바로 어제.

서글서글 웃으며, 나의 동생이, 내가 가장 잘 아는 화가가 말했다.

‘언니, 난 요즘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하다고 느껴.’

‘그렇지. 네가 드디어 내 덕질을 이해하나 보구나. 근데 좀 다른 것 같다. 난 포기할 용기가 없어.’

서글이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네, 좋아하는 마음을 포기하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겠네.’

‘갑자기 근데 왜?’

서글이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음, 하고 뜸을 들였다.

‘점점 힘들어서 그런가 봐.’

‘힘들지, 덕질은 원래 그런 거야. 나도 나이 먹을수록 공연 쫓아다닐 체력이 딸려. 자금은 늘 쪼들리고. 그래도 내 새끼 미소, 내 새끼 목소리 한번 더 듣는 행복을 위해 노력한다고.’

‘그치? 행복하지?’

‘당연한 거 아냐?’

‘맞아, 당연해.’

그러더니 서글이가, 화판과 물감, 종이로 가득한 자기 방 쪽을 건너다보았다.

그 시선에서 어릴 때의 서글이가 비칠 듯 말 듯했다.

서글이가 입을 열었다.

‘계속 좋아하자. 용기 내서.’


내가 대꾸했다.

‘뭘 용기씩이나. 그냥 좋아해. 다 타버릴 때까지.’

‘난 이미 다 타버린 거 같은데.’

‘다 탄 것 같아도 그 안에 쥐꼬리만 하게 남아 있는 거야. 그리고 다 타버리면 뭐 어때. 그냥 좋으면 좋은 거지. 원래 복잡하게 생각하다 오히려 헛다리짚는 거야.’

‘그런가…… 모르겠다.’

‘모르겠구나.’

‘모르겠어.’

‘모를 수 있지.’

‘모르려나 봐.’

‘언제까지.’

‘평생?’

‘거참 큰일이네.’


‘…….’


‘…….’

‘언니, 미안.’

‘괜찮아, 가.’

‘땡큐!’

그렇게 말하고, 서글이는 다시 자기의 방이자 작업실인, 눅눅한 세계로 들어가 버렸다. 마음에 떠오른 그림을 놓치지 않고 우리의 세계로 불러들이기 위해.

분명 지금도, 용기를 내서 붓질을 하고 있을 테다.



*선곡: 체리필터, <오리 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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