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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지 May 08. 2024

기록 없는 사람

*이용악의 시 패러디, 혹은 오마주, 그도 아니면 모방



너는 국적이 없다

국적 없는 너에게

잠시 이곳에 살자고

말했다


잠시라는 말에


너는 잠에서 깼다


너를 낳은 여자가 살던 나라에는

사막이 있었다

여자의 울음 섞인 속삭임을 듣고 자란

너의 귀는 자꾸 길어졌다

낯선 사람들의 말을 너무 많이 담은 탓이었다


너는 기록이 없는 사람

이곳에서는 기록 없음은 죄다

죄를 지기엔 너무 어린 나이

그래서 네 기록의 공백을 알아차린 사람들이

대신 죄인이 되었다


낙타를 그리고 있을 때면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돌아갈 수 없었다

돌아간다는 말은

그곳에서 이곳으로 왔다는 뜻

이곳밖에 모르는 너

갈 곳밖에 없다


네가 태어나던 날 이곳에서 추방된 아버지

독하게 따라붙은

바다를 건넜다는 말


탄식이란 단어를 처음 배운 날

너는 어머니를 떠올렸다

기록을 주지 못해 미안해

너를 빈 종이로 만들어 미안해


영원한 이주자 국적 없는 소년

너는 낙타의 운명을 타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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