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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지 Aug 29. 2024

손으로 쓰는 일기가 귀찮아지다니!

하지만 결국 만년필과 종이가 좋아.


요즘에는 손으로 쓰는 일기조차 귀찮다. 왜 ‘조차’일까? 그건, 원래 손 일기를 무척 좋아했기 때문이다. 좋아하기만 했을까, 때로 손 일기는 내 생존 수단이기도 했다.


아무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을 듯한 유치한 감정들이, 유치하지만 사실은 너무나 내게는 심각했던 고민과 괴로움들이 일기에서는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뻗어나가곤 했다. 그 안에서 숨통이 트였다. 숨통이 트이면 실마리가 보였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도 내 감정을 오롯이 마주할 수 있기 때문에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그 잠깐 잠깐의 휴식이 한 줄기 빛이었다.


일부러 시간을 내서라도 손으로 일기를 썼다. 쓰지 않으면 정말 숨이 막히는 것 같아서, 미칠 것 같아서. 자기 전에도 쓰고 화장실에서도 쓰고 지하철에서도 쓰고 버스에서도 썼다. 아마 가장 많이 썼던 공간은 출퇴근하는 전철 안이 아니었을까.


아무리 지치고 힘들어도 일기만큼은 거의 매일 쓰곤 했다. 타이핑하는 걸로는 채워지지 않는 느낌이 있었다. 손으로 써야지만, 온전히 나를 만날 수 있는 느낌이었다. 손으로 쓸 때 가장 솔직한 느낌이 들었다. ‘검열’을 당하지 않고 쓴다는 느낌이.


그런데 요즘은 왜 손으로 쓰는 일기조차 귀찮을까.


잘 모르겠다.


왜일까?


어쩌면 그렇게 심각한 고민이나 괴로운 감정이 없어서일지도 모르겠다.


혹은 신체적으로 지쳐서, 또는 노화로 인해(?!) 손 근육을 최대한 덜 쓰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여전히 손으로 메모도 하고, 필사도 하고, 스케줄러도 쓴다. 낙서도 한다. 다만, 일기 쓰기를 예전만큼 즐기지 않을 뿐.


그래서 타자를 치며 일기를 갈음해 볼까 했다. 지금 쓰고 있는 글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역시, 손으로 쓰는 일기만큼 후련하지는 않다. 타이핑할 때는 이상하게 모든 것이 어색하고 낯설게 느껴진다. 오랜 세월 동안, 필기도구를 이용해 적는 행위가 인류의 유전자에 깊이 새겨진 탓일까? 타이핑하며 글 쓰는 일은 영 어색하다. 손 글씨로 일기를 써 나갈 때면 마음이 차분해지는데, 타이핑을 하니까 왠지 불안하다. 자꾸 수정하고 싶고, 단어를 바꾸고 싶다. 손으로 쓸 때는 들지 않는 생각이다.


확실히, 타이핑을 하면 만년필이나 연필을 사용할 때보다 훨씬 많은 양의 글을, 동일한 시간 동안 쓸 수 있다. 물론, 멈추지 않고 계속 적는다는 전제 하에서.


그런데 내 마음은 왜 이렇게 불안할까. 왜 즐겁지 않고, 시원하지 않고, 계속 간지럽고 두근거리기만 할까.


‘손으로 쓰는 일기가 귀찮아졌다’라고 적기 시작했는데 결론은, ‘타이핑하며 쓰는 일기는 오히려 마음이 불편하니, 다시 만년필로 써야겠다’로 끝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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