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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솔부는 책바람 Apr 11. 2024

죽음이 있던 자리에
빛이 있었다

[책리뷰] 이반 일리치의 죽음 / 톨스토이 / 문예출판사




산을 오르고 있다고 생각하며 걸었지만 사실은 산을 내려가고 있었던 거야. 

정말 그랬어. 

다들 내가 산을 오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꼭 그만큼 내 발밑에서는 삶이 멀어져 갔던 거야······. 

이제 다 끝나버렸고, 죽음만 남아 있어!


이반 일리치의 죽음 P.87




'작가들의 작가'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주인공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철학적 사유를 담은 작품이다.




그들이 이반 일리치의 사망 소식을 듣고 생각한 것은 그로 인해 생길 자리 이동과 승진이 전부는 아니었다. 

가까운 사람이 죽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누구나 그렇듯 그들 역시 속으로 안도감을 느꼈다.

'죽은 건 내가 아니라 바로 그 사람이야.'


이반 일리치의 죽음 P.11




소설은  판사로서 성공 가도를 달리던 이반 일리치의  사망 소식이 동료들에게 전해지면서 시작한다.


동료 재판관들과 검사는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애도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신들의 승진과 자리 이동의 기회로 받아들이며  죽음이 자신들에게 일어나지 않았음에 안도한다.


또한  장례식에 가는 것조차 귀찮은 의무로 여기며 미리 예정되어 있던 카드게임 모임 참석을 위해 빠르게 조문을 마친다.


가까운 동료의 죽음을 목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죽음이라는 것은 자신들과 무관한 일로 여기며 그들의 일상은 어떠한 동요도 일어나지  않고 변함없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 대한 냉담한 반응은 그의 동료들뿐만이 아니라  가족들에게서도 나타난다.


아내는 남편의 죽음 앞에서도 국가로부터 받을 수 있는 연금에 관심을 기울이고, 딸은 자신의 결혼에 대한 우려를 품는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인간이다, 

인간은 죽는다, 고로 카이사르도 죽는다"라는 논법이 카이사르에게만 해당되며 자신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이제껏 생각해왔다.

(중략)

카이사르는 죽을 운명을 타고난 인간이었고, 그러니 죽는 게 마땅했다. 

하지만 나만의 생각과 감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나, 바냐, 이반 일리치는 전혀 그렇지 않다. 

내가 죽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건 너무도 끔찍한 일이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P.62




이반 일리치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법조인으로서 촉망받는 삶을 살았다.

똑똑하고 활달하며 예의 바른 그는 자신에게 걸맞은 훌륭한 귀족 가문에서 자란 아름다운 여성과 결혼을 한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아이가 생기면서 부부관계는 악화되고 아내와 사이가 멀어질수록 이반 일리치는 일에 더욱 매달리면서 출세욕에 사로잡힌다.

가정에서보다 일하는데서 즐거움을 찾았고  동료들과의 카드게임은 그를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게 해주었다.


판사로서 승승장구하던 그는 자신의 욕망에 걸맞은 집안을 꾸미다 사다리에서 떨어지면서 옆구리에 부상을 당한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부상이 점차 악화되고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이 발생하면서 평범했던 그의 일상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이반 일리치는 서재로 돌아가 자리에 누웠다. 

또다시 죽음과 단둘이 남았다. 

죽음과 마주 보고 있었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죽음을 바라보며 두려움에 몸서리칠 뿐이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P.66




이반 일리치는 자신에게 닥친 죽음의 그림자를 처음에는 부인하며 무시한다.

그러나 통증은 나날이 더욱 심해지고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없게 되자 죽음은 피할 수 없는 현실임을 직시하게 된다.

이로 인해 그는 성공적으로 여겨졌던 자신의 삶에 대한 회의에 빠지며 삶의 목적과 가치에 대해 고찰하기 시작한다.

이반 일리치는 자신의 고통을 공감하지 못한 채 가식적인 인사를 건네는 주변인들에게 분노와 실망을 하면서 동시에 자신 또한 과거에 얼마나 위선적인 모습으로 살았는지 알게 된다.




이반 일리치가 일에서 얻는 기쁨은 자만심이  주는 기쁨이었다.

사교에서 얻는 기쁨은 허영이 주는 기쁨이었다. 

반면 카드로 휘스트 놀이를 하면서 얻는 기쁨이야말로 진짜 기쁨이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P.43




죽음이 점점 가까워짐에 따라 이반 일리치는 자신이 성공적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실제로는 모두 거짓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명예와 부 그리고 카드게임에서 찾았던 행복이 실제로는 그의 내면을 충족시켜주지 못했고 자신이 얼마나 가식적이고 위선으로 가득한 삶을 살아왔는지 알게 된다.


그러나 이반 일리치는 삶의 마지막 순간 그의 손을 잡고 우는 아들의 눈물을 통해 자신이 진정으로 바랐던 것은 이해와 사랑이었음을 알고 죽음의 두려움과 고통에서 벗어나게 된다.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다 망쳐놓았다는 사실을 의식하면서도 바로잡을 기회조차 없이 세상을 떠난다면, 그땐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이반 일리치의 죽음 P.93



많은 사람들은 평온하고 우아한 죽음을 맞이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아무도 자신의 죽음의 순간을 알 수 없고 어떤 환경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될지 예측할 수 없다.


죽음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인 반면 삶은 어느 정도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이다.

어떻게 살고 어떤 가치를 추구할지는 우리의 의지와 선택에 달려있다.


성공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양하다.

그러나 생의 유한함을 깨닫고 살아갈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의 기준이나 사회적인 평가에서 좀 더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욕심을 내려놓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하는 『이반 일리치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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