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같은 세계를 보고 있는 걸까?

1Q84 & 물리학은 처음인데요 / 무라카미 하루키 / 마쓰바라 다카히코

by 솔솔부는 책바람

아름다운 이론이란 다양한 형태를 취하는 온갖 복잡한 현상을 단순한 원리로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을 말한다.

이는 표면적으로는 관계없어 보이는 잡다한 현상이 실은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뜻이다.


물리학은 처음인데요 p.284


요즘 마쓰바라 다카히코의『물리학은 처음인데요』를 읽고 있는데 책장을 넘길수록 무라카미 하루키의『1Q84』가 자주 떠올랐다.

『1Q84』는 권당 600페이지가 훌쩍 넘는 세 권짜리 대작이라 늘 읽기를 미뤄왔지만 막상 읽기 시작하자 멈출 수 없는 몰입감에 며칠 동안 책 속 세계에 푹 빠져들었다.

하지만 다 읽고 나니 작품 속 세계가 선명하게 와닿지 않아 묘한 찜찜함이 남았다.

그 찜찜함은 『물리학은 처음인데요』를 읽는 동안 서서히 풀려갔다.







물리학의 본질은 현실 세계의 복잡하고 예측하기 힘든 현상 속에서 질서를 찾아내는 것이다.


물리학은 처음인데요 p.22


『물리학은 처음인데요』는 물리학을 거의 접해 본 적이 없는 이들을 위한 입문서다.

복잡한 수식이나 도표 없이 오직 '글'로만 물리학의 개념들을 풀어낸다.

저자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상식과 사고방식에 의문을 던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그러한 질문들이 결국 물리학의 발전을 이끌어 온 원동력이었다는 점을 흥미롭게 설명한다.





양자세계에서는 상식이 통하지 않으며, 인간의 경험을 초월한 세상이 펼쳐져 있다.

그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물리학은 처음인데요 p.152


고전물리학에서 양자역학으로 넘어가는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1Q84』를 읽으며 느꼈던 모호함이 양자역학의 개념들과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양자역학은 '모든 것은 정확히 알 수 없다'는 불확실성을 전제로 삼고 여러 가능성이 공존하는 세계를 제시한다.

이러한 다층적 세계관은『1Q84』가 그려내는 풍경과 겹쳐진다.

입자의 중첩, 불확정성, 평행우주 같은 개념들은 두 개의 달이 떠 있는 1Q84 속 세계와 닮았으며 현실과 비현실이 교차하는 혼란 속에서 인물들이 겪는 감정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본질을 비춘다.

고전물리학이 시간과 공간을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것으로 봤다면 양자역학은 확률과 불확실성 속에서 세계를 이해하려 한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은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과연 유일한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이따금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깜박 잊을 뻔하기도 했다.

이건 진짜 현실일까.

자신에게 그렇게 물었다.

하지만 현실이 아니라면, 다른 어디에서 현실을 찾아야 할지 그녀는 짐작도 할 수 없었다.

그러니 우선은 이것을 유일한 현실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어떻게든 이 현실을 살아낼 뿐이다.


1Q84 Book2 p.95


『1Q84』는 주인공 아오마메와 덴고의 이야기가 교차하며 전개된다.

두 사람은 어린 시절 잠시 손을 맞잡았던 기억을 간직한 채 각자의 삶 속에서 서로를 잊지 못한 채 살아간다.

어느 날 고속도로 비상계단을 내려간 아오마메는 미묘하게 어긋난 세계인 1Q84에 들어서고

덴고는 '공기 번데기'라는 기묘한 원고를 고치기 시작하면서 그의 세계도 서서히 균열이 일기 시작한다.

같은 시간, 다른 차원의 세계를 살아가는 두 사람은 보이지 않은 실로 연결된 것처럼 서로의 존재를 느끼며 서로를 향해 나아간다.








이 세상을 우리가 모두 다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이해할 수 없을 뿐.

물리학은 이 세계의 존재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일이다.


물리학은 처음인데요 p.28


『1Q84』는 내가 인식하는 현실이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일 수 있다는 여지를 남기는 작품이다.

그 불가사의한 세계는 양자역학의 원리처럼 모호하고 불확실하다.

아인슈타인은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며 확률로 설명되는 양자역학의 불완전성을 거부했지만 양자역학은 확률에 바탕으로 한 수많은 시행착오 속에서 발전했고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세계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물리학은 처음인데요』를 읽으며 나는 『1Q84』를 다 읽고도 마음속에 남아 있던 찜찜함의 정체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것은 ‘알 수 없음’ 자체가 아니라 '이해하려는 욕망이 충족되지 않음'에서 비롯된 감정이었다.

리처드 파인만은 '양자역학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모든 것을 이해하려는 태도가 아닌 '알 수 없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1Q84의 세계를 이해하는 가장 물리적인 방식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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