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이라는 이름의 희망

죄와 벌 /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 민음사

by 솔솔부는 책바람

하나의 생명을 희생시켜 수천 개의 생명을 부패와 해체에서 구하는 거지.

하나의 죽음과 백 개의 생명을 서로 맞바꾸는 건데, 사실 이거야말로 대수학이지 뭐야!


죄와 벌 1p.123


도스토옙스키 『죄와 벌』은 너무나도 유명해서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끝까지 읽어내기에는 결코 쉽지 않은 고전 중의 고전이다.

방대한 분량도 압도적이지만 성, 이름, 부칭을 넘어 애칭까지 러시아 특유의 아주 긴 호칭도 한몫한다.

분명 같은 인물임에도 상황에 따라 변하는 등장인물의 이름은 독서를 가로막는 또 하나의 장벽이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이 사람이 누구였지?" 하며 앞장을 뒤적이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번에 새 온독에서 한 달간 함께 읽으며 이 소설의 진면목을 비로소 발견할 수 있었다.

혼자였다면 이름의 미로 속에서 길을 잃었겠지만 함께 읽으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미 여러 번 읽었던 작품임에도 이상하게 결말은 또렷하게 남지 않았던 소설이었다.

죄는 선명했지만 결말은 안개처럼 흩어졌다.

이번에야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 이야기가 단순한 범죄의 기록이 아니라 구원으로 향하는 인간의 여정이었기 때문이다.




평범한 사람은 순종하며 살아야 하고 법률을 뛰어넘을 권리가 없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그러니까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이야.

반면, 비범한 사람은 온갖 범죄를 저지르고 온갖 방식으로 법률을 뛰어넘을 권리가 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비범한 사람이기 때문이야.


죄와 벌 1p.467


주인공 라스콜니코프 (로쟈)는 명문대 출신의 수재이자 외모도 출중한 청년이다.

그런 그가 살인을 계획하고 실행한다.

그는 왜 그런 끔찍한 선택을 했을까.

그 밑바닥에는 '인간 분류법'이라는 오만한 논리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는 사람을 '비범한 사람'과 '평범한 사람'으로 나눈다.

그리고 스스로를 나폴레옹과 같은 비범한 존재라 여기며 더 큰 선을 위해 소수를 희생시킬 권리가 있다고 믿었다.

이 논리 속에서 전당포 노파는 '제거해도 되는 존재'가 된다.

그러나 살인 이후 그는 자신이 세운 논리와 양심 사이에서 처절하게 무너진다.

자수 후 유형지에서도 '나는 저들과 다르다'라며 고고한 태도를 유지하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 내면에 숨겨진 오만함을 거울처럼 비춰준다.




"양심이 있는 자는, 자신의 오류를 의식한다면, 괴로워하겠죠.

이게 그에겐 벌입니다. 징역과는 별개로."


죄와 벌 p.476


이번 독서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라스콜니코프와 닮은 듯 다른 두 인물의 대비였다.

라주미힌과 스비드리가일로프다.



라주미힌은 역시 지독하게 가난한 대학생이다.

그러나 그는 로쟈처럼 골방에 갇혀 세상을 탓하지는 않는다.

대신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스스로의 길을 개척하며 삶을 견뎌낸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세상을 재단하는 논리가 아니라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을 붙드는 일이었다.



반면 스비드리일리가로프는 라스콜니코프의 또 다른 얼굴처럼 보인다.

그는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고 도덕의 경계를 거리낌 없이 넘나 든다.

죄의식으로 환영에 시달리던 그는 심판관이 되어 자살을 선택한다.

그 순간 그는 구원의 가능성마저 스스로 끊어낸다.




사랑이 그들을 부활시켰고, 한 사람의 마음이 다른 사람을 위해 무한한 생명의 원천이 되어 주었다.


죄와 벌 p.496


로쟈가 위태로운 두 길 사이에서 방황할 때 그를 붙든 것은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소냐였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거리의 여인 나선 그녀.

소냐는 로쟈를 정죄하지도 설득하려 들지도 않는다.

대신 그와 함께 시베리아 유형지로 가는 길을 선택한다.

계산하지 않는 그 사랑 앞에서 로쟈의 단단했던 논리는 균열을 일으킨다.



성경 속 '나사로의 부활' 장면이 소설을 관통하는 상징으로 남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죽은 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가 무덤에서 걸어 나왔듯 지독한 자기혐오와 고립에 갇혀 있던 라스콜니코프는 사랑을 통해 자기만의 감옥에서 비로소 걸어 나오기 시작한다.




하지만 여기서 이미 새로운 이야기가, 한 인간이 점차 새로워지는 이야기이자 점차 다시 태어나는 이야기,

점차 하나의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옮겨 가 여태껏 전혀 몰랐던 새로운 현실을 알아 가는 이야기가 시작된다.


죄와 벌 2p.498~499


인간은 완결된 존재가 아니다.

죄를 고백했다고 곧바로 새사람이 되는 마법은 일어나지 않지만 사랑 앞에서 무너진 그 틈 사이로 서서히 변화가 시작된다.

자신의 오만함이 산산조각 나고 비로소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부활은 시작된다.



도스토옙스키는 소설을 '미완'의 느낌으로 끝낸다.

라스콜니코프가 성자가 된 모습이 아니라 이제 막 새로운 삶의 첫 발을 내딛는 지점에서 이야기를 멈춘다.

그 '미완의 여백'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큰 희망을 준다.

인간은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되어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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