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속도로 달리는 아이들

비교의 굴레에서 벗어나 나답게, 아이답게 살아가기

by 솔솔솔파파

어제 아이들 학교 자전거 여행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다. 25km 정도의 코스를 달리는 행사였는데, 날씨가 화창하고 습도도 적당해서 종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달릴 수 있었다.

아이들을 지켜보는 내내 미소가 지어졌다. 체력이 좋은 아이는 앞서가고, 체력이 약한 아이는 천천히 가고, 자전거를 잘 타는 아이는 묘기를 부리고,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는 조심조심 균형을 잡아가며... 모두가 자기만의 속도와 방식으로 정해진 거리를 완주해 나갔다. 힘들었을 텐데도 각자의 방식으로 이겨내는 모습이 정말 대견했다.


학교 행사에 가면 늘 같은 생각이 든다. 집에서는 보지 못했던 우리 아이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것. 집에서 혼자 있을 때는 몰랐던 차이가 다른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갑자기 선명해진다. 키, 몸무게, 발달 정도의 차이가 그것이다.


"같은 반 친구들에 비해서 키가 작아서 걱정이에요."

"다른 여학생들에 비해서 너무 살이 쪘어요."

"우리 아이는 아직 자전거를 못 타요."


학부모들이 모이면 으레 나오는 이야기들이다. 이 말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에 비해서'라는 비교의 언어. 집에서 아이 혼자 볼 때는 미처 인지하지 못하다가, 여러 아이들이 모여 있는 상황에서는 끊임없이 비교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불안과 걱정이 마음을 채우기 시작한다.


우리 첫째는 6학년인데 아직도 자전거를 제대로 타지 못한다. 보조바퀴가 있는 자전거를 타는데, 어제는 그 보조바퀴마저 자꾸 빠져서 끌다가 타다가를 반복했다고 한다. 힘은 힘대로 들고 재미도 없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아버지로서 마음이 짠했다. 다른 아이들처럼 씽씽 달렸으면 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억지로 가르치고 싶지는 않았다. 아이가 하기 싫다는 걸 굳이 꼬셔서 가르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친구들을 보고 타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의지를 가지고 배울 테니까. 그때는 몇 시간이면 금방 배울 것이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구를 위해 아들에게 자전거를 가르치려고 하지?' 솔직히 말하면, 그건 나 자신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다 타는데 우리 아들만 못 타는 게 속상했던 건 바로 나였으니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이들을 비교하듯 나도 늘 나를 다른 사람과 비교해왔다는 걸 깨달았다.

'다른 사람은 돈도 잘 버는데... 나는?'

'다른 사람은 집도 크고 좋은데... 나는?'

'다른 사람은 능력도 많은데... 나는?'


수없이 많은 비교 속에서 나는 늘 나 자신에게 실망하고, 초조해하고, 때로는 부끄러워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문득 깨달았다. 유니크함이란 남과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다름'을 단점이 아닌 특별함으로, 결핍이 아닌 개성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남처럼 되려고 애쓰다 보면 결국 나 자신을 잃게 된다. 남의 성과를 보며 감탄하고 나를 비난할 것이 아니라, 그 성과를 만들어낸 노력과 과정을 배우고, 그 꾸준함을 사랑해야 한다.

아이들은 저마다의 개성으로 자라난다. 자전거를 타러 가느니 차라리 수학 수업을 3시간 더 하겠다는 우리 아이를 보며, 내 욕심에 아이를 스트레스 받게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안다. 언젠가는 아이가 자전거를 타며 씽씽 달릴 날이 올 거라는 것을. 그때가 10대일지, 20대일지, 혹은 30대일지는 모르지만, 아이는 결국 자기 시간에 맞춰 해낼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그저 옆에 있어 주고, 격려해 주고, 필요할 때 가르쳐 주면서 묵묵히 기다리려 한다. 각자의 속도로 달리는 아이들처럼, 우리 모두 자신만의 여정을 즐기며 걸어갈 수 있기를. 오늘도 나는 나의 속도로, 아이는 아이의 속도로 함께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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