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해도 사랑받을 수 있어

by 솔솔솔파파

“콰다당!” 대형사고다.

화장실 문 앞에 있던 작은 어항이 쏟아졌다. 마루바닥은 밀물 때의 바닷가처럼 온통 물바다가 되었고, 3솔(7살, 남)이는 입에 김밥을 물고 어쩔 줄을 몰라했다. 어항에 물을 갈아주고, 잠깐 문 앞에 둔 것을 3솔이가 넘어가려다 뒷금치가 걸린 것이다. 모두가 그것을 보고 한숨 짓고 있었고, 나는 올라오는 내 화를 참지 못하고, 3솔이에게 화를 냈다. “왜 밥을 먹으면서 돌아다녀서 사고를 쳐!” 아이는 작은 목소리로 “미안해”라고 했지만 이미 불타오르는 내 화를 멈추지는 못했다. 그때였다.


“왜 아무도 3솔이 걱정은 안 해?”


곤경에 처한 3솔이가 불쌍해진 2솔이의 단호한 목소리였다. 난 순간 멍했다. ‘머지? 내가 왜 이러고 있지?’ 당연히 난 아빠로서 3솔이를 먼저 챙겼어야 했다. 놀라지는 안았는지, 다친 곳은 없는지, 먹던 김밥이 목에 걸리지는 않았는지 먼저 물어 봤어야 했다. 하지만 난 밀려 오는 나의 감정에 빠져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피곤한 몸으로 업지러진 물을 다 치워야 한다는 불편함만 있었을 뿐이었다. 그 순간은 2솔이가 나보다 어른 같았다. 하지만 내 감정이 정리되지 않아서 3솔이에게 가지 못하고, 짧은 한숨, 긴 한숨을 번갈아 쉬면서 아무 말 없이 물을 닦았다. 그순간 어릴 때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넌 왜 맨날 움직이면 사고야! 제발 좀 가만히 있어!" 삶에 지친 엄마의 목소리였다.


아빠의 가게 일을 돕고 살림과 3남매 육아까지 하셔야 하니 엄마는 항상 일이 많으셨고, 자주 아프셨다. 일을 덜어 드리지 못할망정 일을 더 벌리고 있으니 엄마는 지친 몸에 더 짜증이 나셨을 것이다. 그래서 난 어린 시절 실수를 했을 때 누군가에게 “괜찮아”라는 말을 들어 본 기억이 없다.


이것이 나의 완벽주의자의 시작이었다. '내가 실수를 하면 엄마가 힘들고, 아프시고, 나 때문에 돌아가실 수도 있다'라고 잠재의식 속에 코딩해 두었다. 난 나의 실수로 엄마가 돌아 가시면 안된다는 생각 때문에 점점 더 완벽주의에 빠졌다. 호기심 많던 아이는 점점 위축됐고,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실수를 했다는 것은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인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럼 실수도 없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착한 아들이 될지는 몰라도 특별한 사람은 되지 못한다. 아이는 부딫치고 넘어지고, 다치면서 배운다. 이런 배움의 장이 부모의 불안이나 불편 등으로 가로 막힌다.


바닥의 물을 다 정리하고, 고개를 들었을 때 3솔이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내 어릴 때 모습 같았다. 그때는 볼 수 없었던 내 얼굴을 이제야 본다. 고개는 살짝 숙여서 아빠의 시선을 피하고, 눈만 힐끗힐끗 아빠의 눈치를 살핀다. 얼굴과 몸은 경직되어 있고, 귀는 혹시 모를 아빠의 호통소리를 준비하는 듯 쫑긋 서 있다. 애처로워 보였다.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죄인처럼 저러고 있을까? 나는 3솔이를 안아 주었다. 그리고 현재의 3솔이와 과거의 나에게 말해주었다.


“괜찮아. 별 일 아니야. 아빠도 피곤해서 좀 짜증 낸거야.”


그제서야 3솔이의 얼굴이 환해진다.


“미안해. 아빠” 아직은 목소리에 힘이 없다. 그래서 더 단단하게 안아 주었다.


아이들의 실수가 사랑(용서, 위로) 받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난 나의 실수도 사랑해주기로 했다. 내가 날 사랑해주지 못하면 어떻게 아이들의 실수를 사랑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오늘도 내 마음에 천천히 말을 건넨다.


실수해도 괜찮아. 안전해.

실수해도 사랑받을 수 있어.

실수하고 또 일어서면 돼.

실수했다는 것은 너의 특별함이 드러난 거야.

실수해서 배운 것은 아주 귀중한 거야.


"진짜 배움은, 실수를 사랑할 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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