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의 말보다, 아이의 마음을 들어주는 시간
“아빠, 근데 내 이야기 듣고 있어?”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딴생각에 빠져 있다가 2솔이의 호통을 맞고, 나는 황급히 대답했다.
“그럼~ 다 듣고 있지.”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딱히 무슨 얘기를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나는 아이들과 대화할 때 종종 ‘멍 상태’에 빠진다.
대화 중간에 멍해지고, 아이들로부터 주의나 경고를 받는다.
심할 땐 2솔이가 이렇게 말한다.
“아빤 날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
그 말을 들으면 마음이 철렁 내려앉는다.
아이들은 자기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어줄 때,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니까.
2솔이의 하소연도 이해가 된다.
그렇다면, 왜 나는 아이의 말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는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현재에 없기 때문이다.
아이의 말을 들으며, 나는 이미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걱정 사이를 떠돌고 있다.
‘거기서 2솔이는 싫다고 말은 했을까?’
‘저번에도 저러던데 계속 놔둬도 되나?’
나는 마치 방송작가처럼 다음 장면을 시나리오처럼 상상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하나의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바로 ‘하얀 도화지’ 상상법.
아이의 이야기를 들을 때, 머릿속에 하얀 도화지를 한 장 펼친다.
그리고 그 위에 아이의 말대로, 그림을 그려나간다.
“아빠, 오늘 유미랑 놀았는데 재미있었어.”
그 말이 시작되면, 나는 2솔이와 유미를 그린다.
'어디서 놀았지?'
'무엇을 했을까?'
'그때 표정은 어땠을까?'
그림을 완성하려면 나는 자연스럽게 질문하게 되고, 아이의 말을 더 깊이 듣게 된다.
아이와 나 사이에 하나의 그림이 완성되었을 때, 우리는 함께 시간을 그린 것이다.
나는 이 그림을 “경청”이라 부른다.
내가 아이의 말을 들을 때, 판단하지 않고,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건 마치 ‘복면가왕’처럼 겉모습을 가리고 소리만 듣는 일과도 닮아 있다.
아이의 말도 마찬가지다. 아이의 말보다, 아이의 마음을 듣는 것.
그것이 진짜 대화인 것 같다. 오늘도 아이는 학교에서 돌아와 조잘조잘 이야기할 것이다.
나는 조용히 도화지를 꺼내고, 그림을 그릴 준비를 한다.
시간이 지나면 듣고 싶어도 못 들을 때가 올 것이다. 그림을 그릴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많이 그리고, 그 그림들을 마음속에 간직하려 애써본다.
그 그림들을 꺼내 웃으며 추억할 날이 올 테니...
진정한 대화는
아이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마음을 듣는 것이다.
– 하임 G. 기너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