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심장병은 55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자책과 희생 속에서 보낸 인생

by 솔솔솔파파

아버지는 결혼 후 한 번도 그 땅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셨다. 제3한강교 근처 땅, 구두닦이와 아이스케키 장사를 하며 하루 백 원, 삼백 원씩 모아서 산 그 땅 말이다. 할아버지가 사업 자금으로 써버린 그 땅에 대해서는 어머니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한 마디 원망을 하지 않으셨다.


어머니가 들려준 아버지의 이야기는 이랬다.


"하루는 아빠 짐을 정리하다가 낡은 통장을 발견했어. 그 통장을 열어보니 입금란에 100원, 300원, 50원, 450원... 이렇게 백 원 단위 금액이 하루도 빠짐없이 적혀 있더라고. 초등학교 졸업하고 전라도 광주에서 미군 따라 서울 올라와서 구두닦이, 아이스케키 판매원, 잡부... 안 해본 일이 없다더라. 돈 없을 땐 길에서 잠도 자고, 그렇게 매일 모은 돈이야. 그 돈으로 산 땅을 우리 아버지가 홀랑 날려먹었는데도... 결혼 후에는 그 땅 이야기를 한 마디도 안 했어. 나중에 알았는데, 그 땅 팔아서 사진관 하나 차리려고 했다더라고. 나 때문에 그 사람 인생도 불행했던 거지."


어머니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한숨을 쉬셨다. '나만 아니었어도 편하게 살았을 텐데...'


"그게 아직도 한으로 남으세요? 그런데 그건 엄마 잘못이 아니라 할아버지 잘못이고, 아빠의 선택이잖아요."

"아버지는 보고만 있어도 불쌍했어. 어떻게 해서든 가족들 살리겠다고 아버지도 고생을 많이 하셨으니까. 난 아버지랑 같이 어디 가면 자랑스러웠어. 키도 크고 잘생기셔서 사람들이 다들 멋있다고 그랬거든. 그리고 날 가장 믿어주고 자랑스러워하셨어."

"그래도 어떻게 보면 엄마를 땅 때문에 판 거나 다름없는데요?"

"그렇지. 그래도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또 그러고 난 뒤에 얼마나 가슴이 아프셨을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어머니에게 외할아버지는 평생 가슴 아픈 존재였다. 사랑하는 딸을 보내야 했던 그 마음, 그 선택이 옳았는지 평생 고민했을 그 마음을 어머니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원망할 수가 없었다. 다만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든 그 시대가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할아버지에 대한 어머니의 연민은 결혼 후에도 계속됐다. 사업이 어려워질 때마다 할아버지는 결혼한 어머니에게 돈을 융통해 달라고 부탁하셨다. 어머니는 이웃들에게 돈을 빌리거나 계 돈을 먼저 타서 할아버지께 보내드렸다.


원금이나 이자 날짜를 어긴 적이 한 번도 없었던 어머니를 신뢰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다행히 돈을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빌린 돈을 갚지 못할까 봐 매일 마음을 졸였다.


그러다 어머니 인생에서 다시는 잊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난 결혼해도 계속 도움을 요청하는 친정 식구들 때문에 전화벨 소리만 들려도 손이 떨리고 심장이 뛰었어. 아버지는 사업 자금이 필요하면 으레 나한테 전화해서 구해달라고 하셨고, 결혼한 언니, 동생들도 다들 살기 어려우니까 나에게 돈 좀 빌려달라는 거야. 그럼 난 또 그걸 모른 척 못 하는 거고.


한 번은 이사하려고 보증금을 받아둔 게 있었는데, 아버지가 또 전화 와서 급하다고 돈 좀 빌려달라는 거야. 그래서 '아버지, 저 모레 이사 들어갈 때 이걸로 잔금 쳐야 해요. 그때까지 줄 수 있어요?'라고 했더니 된다는 거야. 그런데 이삿날이 돼도 연락이 없어. 전화했더니 돈이 없다는 거야.


난 환장하는 거지. 짐은 집 앞에 갖다 놨는데 잔금이 없어서 옮기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굴렀어. 결국 남의 집 처마 밑에 짐을 쌓아두고 하룻밤을 밖에서 잤어. 아빠는 한숨만 푹푹 쉬고, 난 정말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오더라고. 결국 결혼 예물 팔고 아는 사람에게 급하게 빌려서 겨우 돈 만들어서 들어갔어."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가 미우셨을 것이다. 하루는 어머니를 부르더니 조용히 말씀하셨다고 한다.


"당신이 계속 친정 도와주면 우리 모두 망하는 거야. 이제 시집왔으니까 제발 우리 살림만 신경 써."


"그 사람이 얼마나 어렵게 살았는지 아니까, 돈 없어지는 게 무섭고 두렵겠다는 생각은 했는데... 어쩌겠어. 아버지와 동생들이 죽게 생겼는데..."


그 뒤로도 할아버지 사업이 완전히 망해서 집안 식구들이 모두 길에 나앉은 일이 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뿐만 아니라 동생들까지 남의 집 처마 밑에서 속이불을 지붕처럼 만들어 이슬만 피하며 살았다.


"그런데 어떻게 모른 척을 하겠어. 밥 해서 나르고 돈 빌려다 창고로 임시거처를 마련해 드렸지. 그랬더니 그 사람은 이제 말도 안 하더라고. 그 뒤로 아버지가 집에 오면 아니 저 대머리는 왜 또 온 거야 하면서 본 척도 안 하고 이불속에서 나오지도 않더라고. 난 정말 뼈가 아프더라. 너무 속상해서 밤마다 혼자 엉엉 울었어."


어머니의 심장병이 어디서 왔을지 짐작이 됐다. 하루하루 마음 졸이는 상황들이 어머니의 심장을 강하게 조여왔을 것이다.


"엄마, 다시 그때로 돌아가면 다른 선택을 하셨을 것 같아요?"

잠시 생각에 잠겼던 어머니는 "아니, 똑같았을 거야"라고 말씀하셨다.

"맞아요. 엄마는 똑같이 했을 거예요. 엄마는 그때 그 상황에서 엄마가 하실 수 있는 최선을 다 하셨거든요. 그러니 누구 탓도 아니에요. 자책할 필요 없어요.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다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고, 엄마도 그 상황에서 모른 척할 수도 없었으니까요. 그러니 이제 마음에서 내려놓으세요."

어머니는 짧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나는 살면서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때론 답답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도 그 희생 덕에 살아왔다는 걸 알았다. 어쩌면 나도 어머니 가슴에 돌 하나를 얹었으리라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헤어지기 전 어머니를 안아드렸다.


"아이고, 우리 엄마 애쓰셨어요. 얼마나 힘드셨을까. 이제 좀 편히 사세요. 사랑해요."

"고마워. 나도 사랑해."


아직도 어머니께 사랑한다고 말할 때 가슴이 먹먹해진다.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일은 분명 위대한 일이다. 하지만 그 희생으로 인해 스스로를 끝없이 탓하는 것은 결코 누구도 원하는 게 아닐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진심으로 어머니가 자신의 심장을 짓누르는 그 책임감과 자책감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길 바랐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오늘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출처: 영화 <아이스케키> 2006.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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