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청이의 인당수가 어머니에겐 결혼식장이었다
사진관집 남자가 왔다. 그런데 평소와는 다르게 말끔하게 차려입고 왔다. 남자는 말없이 방으로 들어와 외할아버지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영문을 몰랐던 외할아버지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드디어 남자는 말을 꺼냈다.
"어르신, 미스김과 결혼하고 싶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
땅문서 이야기를 하러 온 줄 알았는데 갑자기 결혼이라니... 외할아버지는 안심하면서도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평소에도 어머니가 있을 때 가게에 와서 어머니가 골라주는 넥타이나 옷들을 아무 말 없이 사가는 것을 보고 가족들은 '저놈 좀 수상한데...'라고 의심은 하고 있었다.
"글쎄... 그건 좀 생각해 봄세."
외할아버지는 대답을 미뤘다. 그도 그럴 것이 가게를 운영하면서 모든 일을 도맡아 하는 어머니였기 때문에 어머니가 시집을 가면 가게를 운영할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첫 번째 남자의 약혼도 거절했는데 이번에는 쉽게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날 저녁 외할아버지는 어머니를 불렀다.
어머니는 그날 저녁을 떠올리며 말씀하셨다.
"나를 불러서 말씀하시더라고. 저놈이 너를 안 주면 분명 나에게 해코지할 줄도 모른다고, 그러니 나보고 시집가야 할 것 같다고 하시는 거야. 근데 그 소리를 듣고 너무 기가막히더라고... 자식 된 도리로 아버지 말씀을 거역할 수도 없고, 만약 거절했다가 진짜 아버지가 사고라도 당하면 나머지 가족들은 어쩌나 싶은 생각도 들고, 그래서 내가 한 번 희생하면 되겠지 하는 마음을 먹었지만 그래도 그 서러움은 가시질 않는 거야. 그래서 대답도 안 하고 울면서 밖으로 나와 버렸어."
어머니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숨은 짧았고, 그 당시 서러움과 한(恨)은 아직도 어머니의 목소리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아들을 바랐던 아버지를 위해 ‘제발 우리 아버지에게 아들 좀 주세요.’라고 기도했던 둘째 딸. 마침내 아들이 태어났을 때 동네사람들에게 ”우리 아버지 아들 생겼어요. “라며 누구보다 좋아했던 둘째 딸. 남동생이 생긴 후 처음으로 아버지께 욕을 들었을 때 ‘내가 딸이어서 난 아버지에게 첫째가 될 수 없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았던 둘째 딸이었다.
태양처럼 믿었던 아버지. 아버지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다짐했던 26살 처녀는 처음으로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제3한강교 옆 땅문서가 빚이 되어 팔려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니 자신의 신세가 너무 가여웠다. 그동안 아들처럼 아버지 일을 돕고, 학교도 못 가고, 집안일에 매달리고, 동생들을 돌봤던 그 모든 시간들이, 그날 이후 모두 한(恨)이 되었다.
"그 뒤로 길에서 그 남자만 보면 원망스러운 마음에 그 사람이 더 싫은 거야. 키가 작은 것도 싫었고, 남자치곤 왜소했던 몸도 싫었고, 정말 다 싫었어. 내가 이렇게 미끼로 팔려가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너무 막막했어. 그런데 하루는 그 남자가 아버지를 찾아온 거야. 내가 화장실에서 몰래 들었는데 그러더라고. 미스김하고 결혼은 아무래도 힘들 것 같다고, 길에서 마주치면 안색이 변하고 날 본 척도 안 한다고. 그러니까 아버지가 걔는 착해서 내가 소금 섬을 물로 끌라해도 끄는 아이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그러시더라고. 그 말을 듣고서야 알았어. 내 운명을 이제는 내가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어머니의 목소리는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 차분했다. 어렸을 적부터 동네방네 뛰어다니며 이웃집 아저씨, 아줌마들과 친했던 말괄량이 소녀는 더 이상 없었다.
그 뒤로 그 남자와 함께 밥도 먹고 차도 마셨지만 어머니는 곁을 내어 주지도, 웃음을 허락하지도 않았다. 결국, 어머니는 그 남자와 결혼하게 되었다. 누군가는 인생에서 가장 눈부신 날로 기억할 결혼식이, 어머니에게는 가장 어두운 날이었다. 끌려가듯 내디딘 한 걸음, 심청이의 인당수가 어머니에게는 결혼식장이었다. 두려웠지만, 그것은 아버지를 위한 희생이었다.
그날 어머니의 눈물을 흘리게 만든 그 남자,
그는 평생 어머니 곁을 지킨 사람,
나의 아버지였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출처: 서울정보소통광장 제3한강교 공사 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