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년 만에 돌아온 졸업장

엄마는 어렸을 때 꿈이 뭐였어요?

by 솔솔솔파파


미사를 마친 어머니를 근처 식당에서 만났다. 예쁜 꽃무늬 옷에 분홍색 립스틱을 바르고 단정하게 머리를 정돈하신 어머니는 평소보다 더 고우셨다. 안색이 좋으시니 내 마음도 가벼워졌다. 어머니는 나를 바로 알아보지 못하셨다. 시력이 많이 나빠지셔서 고개를 앞으로 쭉 내밀고 눈을 가늘게 뜨셔야만 겨우 누군지 알아보실 수 있으셨다. 나는 어머니가 목소리로 알아차리실 수 있도록 큰 소리로 인사를 했다. "엄마! 아들 왔어요." 그제야 긴장했던 얼굴이 풀어지며 환한 미소를 지으셨다. "어서 와. 멀리 오느라 고생했지?" 늘 그렇듯 어머니는 나를 먼저 걱정하셨고, 우리는 주문을 하고 식사를 했다.


어머니는 자신의 갈비탕 속에 고기를 골라서 내 그릇에 덜어 주셨다. "많이 먹어. 네가 건강해야 아이들을 키울 수 있는 거야." 늘 보던 장면, 늘 듣던 말이라 익숙할 법도 한데 아직도 어머니 드시라고 손사래를 친다. 하지만 결국 내가 진다. 밥을 반쯤 먹었을 때 나는 자연스럽게 질문을 하였다.



"엄마! 엄마는 어렸을 때 꿈이 뭐였어요?"


"꿈? 꿈이 어딨어. 먹고살기 바쁜데..."


"아니 그래도 뭐가 하고 싶다거나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셨을 거잖아요."


"그런 거 없었어. 학교도 제대로 못 갔는데 무슨 꿈이 있었겠어."


어머니가 학교에 제대로 못 다니셨다는 이야기는 오래전에 들어서 알고 있었다.


난 아직도 눈물 흘리시며 말씀하셨던 그날을 기억한다.




어려서부터 온갖 집안일은 다 내 몫이었어.
우리 엄마는 여자가 공부해서 뭐 하냐고, 살림만 잘하면 된다고 하셨어.
그래서 학교 갈 때마다 욕먹고, 공납금도 안 주셨어.
졸업식 날까지도 결국 공납금을 다 못 냈어.

졸업앨범? 그런 건 아예 포기했지.
근데 친구들이 그러는 거야.
“야, 그래도 졸업장은 주겠지. 앨범은 비싸서 못 줘도.”
그 말에 나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 생기더라.
그래도 졸업장 하나는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그때는 학생들이 많아서 강당에 다 모여서 졸업식을 했는데,

번호 순서대로 줄을 서 있으면

이름을 부르고 졸업장 받고 들어가면 그다음이 학생이 받고

하는 식으로 줄 서서 졸업장을 받았어.
나도 친구들 말에 괜히 용기를 내서 줄에 섰어.
그때 얼마나 떨렸는지 몰라.
앞사람들이 하나씩 앞으로 나갈수록
내 심장이 쿵쿵 뛰었어.

‘내 이름, 안 부르면 어쩌지…?’
계속 그 생각만 맴돌았지.

근데 내 앞 번호를 호명하고,

“14번 김말자.”
내가 서 있는데 내 뒷번호를 부르는 거야.
“16번 이순자.”

와~ 그때는 정말 미치겠더라.

그 순간, 강당 안에 있던 사람들이 다 나만 보는 것 같았어.
정말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그날 알겠더라고.
온몸이 후끈하고, 머리끝까지 부끄러움이 차올랐어.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줄에서 빠져나와 들어갔고.

졸업식 끝나고 교실에 와서 펑펑 울었지.

그날 우리 반 친구들이 다 같이 울었어.

그날의 그 수치심은…
지금까지도 생생해.

지금도 그날 생각을 하면 손발이 떨려.


어머니는 그날의 기억을 배우처럼 감정을 담아서 생생하게 말씀하셨고,

그 아픔을 지금도 기억하듯 그날처럼 눈물을 흘리셨다.


나는 지금은 문을 닫은 고등공민학교를 수소문하여 어머니의 졸업장을 찾아드리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2013년 어느 봄날, 가족이 모두 모여 식사를 한 날이었다.


"엄마, 여기 잠시 앉아 보세요."


부엌에서 설거지를 마치고 정리하시던 어머니의 손을 살며시 잡아 식탁 앞 의자에 모셨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준비해 둔 졸업장과 꽃다발을 꺼냈다. 어머니는 무슨 일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셨다. 나는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또렷한 목소리로 낭독했다.


"졸업장. 위 사람은 3개년의 전 과정을 수료하였기로 본 졸업장을 수여함. 00고등공민학교장 홍길동"


졸업장 낭독을 마치고 졸업장과 꽃다발을 어머니께 드렸다.

어머니는 그날처럼 손발이 떨리고, 거친 호흡을 내쉬시면서 눈물을 흘리셨다.

54년 만에 졸업장이 어머니 품에 안 겼을 때는 졸업장을 품에 안으시고 소리내어 우셨다.


"고맙다. 고마워. 이게 뭐라고. 그동안 그렇게 마음에 담아 뒀을까?"


어머니는 한 맺힌 졸업장을 가슴에 안고 연신 쓸어내리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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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어머니의 가슴 속에 찾아 온 54년만의 봄이었다.




"엄마, 그래도 좋아하셨던 일은 있으셨을 거잖아요."


한참을 고민하시다가


"난 쓸고 닦는 것이 좋았어. 양은그릇이 반짝반짝 해지면 내 마음도 반짝거리는 것 같아서 좋았거든."



꿈이 없으시고, 가장 좋았던 일이 정리하는 것이라는 어머니.


"그리고 싹 정리해 놓으면 동네 아줌마들이 와서 살림 야무지게 잘한다고 칭찬을 해주시면 그게 좋았던 것 같아. 그리고 아버지가 보고 씨이익 웃으시면 난 그게 정말 좋았어."



말씀하시는 어머니의 눈빛이 어린아이처럼 반짝거렸다.


그저 누군가에게 칭찬받고, 인정받고 싶은 어린 소녀였다.


어머니가 꿈꿨던 것은, 단지 졸업장이 아니라 자신이 소중한 존재였다는 한 줄의 증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살림을 열심히 하셨던 것도 그것을 통해 자신을 증명하고 싶으셨을 것이다. 어머니에게 꿈은 거창한 직업이나 명예가 아닌, 자신의 존재로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어머니의 반짝이던 눈빛이 자꾸 떠올랐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꿈과는 달랐지만, 어머니는 이미 자신만의 방식으로 꿈을 살아내고 계셨던 것이다. 주변 모두가 인정하는 살림꾼으로 우리를 키우시고, 어려웠던 집안을 일으키신 그 모습 속에서. 어쩌면 꿈을 이룬다는 것은 화려한 성취가 아니라,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살아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본다면, 어머니의 삶은 이미 가장 아름다운 꿈의 실현이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머니의 삶의 기록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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