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옹, 눈물 그리고 치유의 시작

신성일보다 멋졌던 어머니의 아버지

by 솔솔솔파파

"엄마, 엄마는 옛날 어렸을 때 기억나세요?"

"그럼 기억나지."

"가장 어렸을 때가 언제예요?"

"국민학교 때인가?"


어머니는 젓가락을 내려놓으시고 물을 한 모금 마시셨다. 마치 이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시겠다는 신호 같았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발을 크게 다치신 적이 있었어. 얼음 장사하셨는데 그 얼음이 발등을 찍어서 피도 많이 나고 걷지도 못하셨지. 그 바람에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되셔서 담배도 피우다 남은 담배가루 모아서 신문지에 싸서 피고 그러셨어."


어머니의 목소리가 잠시 가라앉았다.


"근데 그게 너무 불쌍한 거야. 그래서 옆집에 사는 아줌마가 담배가게 점원을 구한다고 해서 내가 하겠다고 했지. 담배 한 갑만 주면 열심히 하겠다고. 사는 집에서 담배가게까지 한 30~40분 걸리는데 매일 뛰어가서 일하고 담배 한 갑씩 얻어왔어."

담배.JPG 출처: 북성로 문화 플랫폼

어머니는 웃으시면서 자랑스럽게 말씀하셨다.


"하루는 집에 거의 다 왔는데 담배를 깜빡하고 안 가지고 온 거야. 그래서 다시 되돌아 뛰었어. 그냥 막 뛰어서 담배가게를 갔더니 아줌마가 왜 또 왔냐고 묻더라고. 그래서 아버지 드릴 담배를 안 가지고 갔다고 하니까 그 아줌마가 어린것이 어쩜 이렇게 착하냐고 하면서 담배 한 갑을 그냥 주시는 거야."


얕은 한숨을 쉬시고 말을 이어가셨다.


"그렇게 매일 담배 한 갑씩을 갖다 드릴 때마다 아버지가 지긋이 웃으시면서 고맙다고 말해주면 그게 너~무 좋았어. 그럼 하나도 힘들지 않았어. 나중에는 내가 일하시는 곳에 오셔서 보시고는 마음이 아프셔서 담배 안 피워도 되니까 다니지 말라고 하더라고. 가게가 아니라 그냥 작은 박스 같은 공간에 들어가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담배만 파는 곳이었거든."


키도 크고 풍채도 좋으셨던 외할아버지가 생각났다. 어머니는 그런 외할아버지가 신성일보다 더 멋졌다고 항상 말씀하셨다. 어쩌면 어머니에게는 진짜 연예인 같은 존재였던 것 같다. 팬이 연예인을 대하듯 그 사람을 위해서라면 못할 것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외할머니 이야기할 때는 긴 한숨부터 나왔다. 예전에 아들이 귀한 집에 딸들은 얼마나 차별을 받았겠는가? 7녀 1남의 둘째였던 어머니는 수없이 많은 욕과 차별을 견뎌야 했다.

"어렸을 때 엄마는 우리를 그냥 계집애들이라고 하면서 구박을 했어. 특히 나는 이것저것 살림을 시켜서 아무 데도 못 나가게 했어. 학교에서 소풍 간다고 하면 못 가게 하고, 공납금도 안 주고."


어머니의 목소리가 점점 떨려왔다.


"조금만 잘못해도 '귀신은 눈 가리가 멀었지. 저런 년들 차로 한 바퀴만 굴리면 석 달 열흘은 배불리 먹을 텐데 왜 안 잡아가는지 모르겠어'라며 자식에게 하는 말이라고는 믿기지도 않을 말을 입에 달고 살았어. 오죽하면 친구들이 너희 엄마는 친모가 아니라고 하더라고. 저런 엄마가 친모일 리 없다고. 그래도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 엄마도 좀 이해는 돼. 어려운 살림에 자식은 많지. 먹고사는 게 먼저니까 딸자식들 다 공부 못 시켰겠지. 아들 귀한 집에서 아들 못났는 스트레스는 우리한테 다 푼 거고."


한숨이 길어지고 목소리가 약간씩 떨렸다. 어머니 눈에는 어느덧 눈물이 글썽거렸다.


전쟁 후 가난했던 시절 이야기. 아들이 아니어서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했던 이야기.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머니에게 천대받았던 이야기. 살림하고 일하느라 학교도 제대로 못 갔던 이야기. 모두 엄마의 인생이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들었던 이야기도 많고, 새로운 이야기도 많았다. 들었던 이야기도 새로 듣는 이야기처럼 고개를 끄덕이고 맞장구를 치며 들었다.


"정말? 엄마 많이 속상했겠다."


그럼 또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그땐 정말 너무 죽고 싶었어."


전쟁 직후 어머니의 삶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삶이었다.



1시간쯤 이야기하던 중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집에서 온 전화였다.

"아빠, 언제 와?"

막내아들의 참새 같은 목소리였다.

어머니는 흐르는 눈물을 애써 닦으시고, 애들 기다리니 빨리 가라 하셨다. 저녁 먹었던 그릇들을 정리하고, 설거지하고 집에 갈 채비를 서둘렀다.

어머니는 뭐 챙겨줄 거 없나 여기저기를 뒤적거리셨다. 참치캔, 천혜향, 체리 몇 개씩 검은 봉투에 담아 주셨다. 두고 드시라고 해도 갖다 애들 먹이라며 기어코 내 손에 쥐여 주셨다.

봉투를 들고 현관으로 가다가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안아드리고 싶었다.


"아이고~ 우리 엄마 한 번 안아 드려야지." 하면서 꼬옥 안아드렸다.


어색했다. 예전에는 그렇게 많이 안겼던 품인데... 어머니를 안고 있었지만 내 품에 들어온 어머니의 몸이 낯설었다. 언제 마지막으로 안아드렸길래 이리도 낯선 것인지 속상하고 부끄러웠다.

어머니도 나를 안아주면서 등을 토닥여 주셨다. 나도 어머니를 꼬옥 안고 등을 쓸어드리며 말했다.


"정말, 애쓰셨어요."


그랬더니 드디어 참고 있던 울음이 터지셨다. 꺼억꺼억 소리 내면서 우셨다. 나도 어머니를 안고 소리 내어 울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눈물을 꾸욱 참았을 텐데 그날만큼은 그냥 소리 내어 울고 싶었다.

그동안 꾹꾹 눌러놓고 참았어야만 했던 이야기를 털어놓으니 오랜 세월 쌓아두었던 죄책감, 수치심, 두려움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 부둥켜안고 한참을 그렇게 울었다.


"엄마, 엄마 잘못이 아니야. 이제 그만 자책해."

"엄마는 정말 할 만큼 했어요. 미운 사람은 미워해도 돼."


엄마 잘못이 아니라는 말을 계속해드렸다.


"울고 싶은 만큼 실컷 울어요. 괜찮아."라고 말하면서 등을 토닥여 드렸다.


울음이 잦아들었다가도 다시 우시고, 또 잦아들기를 몇 번 반복하시고는 "애들 기다리니 빨리 가라" 하신다.

한참을 우셔서 기운이 빠져 보여 걱정이 됐다. 어머니 혼자 두고 집을 나서자니 마음이 무거웠다.


"괜찮으세요?"

"응. 괜찮아. 울었더니 속이 시원하다."

"그래도 얘기하니까 좋아요?"

난 괜히 옛날 아픈 기억을 꺼내서 어머니를 더 힘들게 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돼서 여쭤보았다.

"응 좋아. 내가 이런 얘기를 어디에서 하겠니. 아들이니까 하지."


조금 안심은 됐지만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아이들을 혼자 돌보고 있을 아내를 생각하니 어머니 집에 더 머무를 수도 없었다. 난 어머니가 괜찮으신 것을 보고 서둘러 나와 집으로 왔다.


아이들은 내가 도착한 소리를 듣고, 잠옷 바람으로 뛰어나왔다.


"아빠~, 왜 이제 와! 사고 난 줄 알고 엄청 걱정했어." 막내아들이 말했다.


막내아들에서 삼 남매의 아빠로 돌아온 것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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