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에게 가장 두려운 일
얼마 전 병원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오느라 차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어머니는 다른 때보다 기운이 더 없어 보이셨다. 틀니를 뺀 입은 쪼그라들어 있었고, 입술은 가끔씩 떨리기도 했다. 눈은 창밖을 보고 계셨지만 더 먼 곳, 더 깊은 곳을 보시는 것 같았다. 한 번씩 내쉬는 한숨은 과거부터 쌓아 온 한을 세상에 돌려주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두려운 미래에 대한 걱정을 날려 보내기 위한 한 인간의 몸부림 같아 보이기도 했다. 조용한 정적을 깬 것은 나의 질문이었다.
"무슨 걱정 있으셔? 오늘 많이 힘들어 보이시네. 침 맞으셔서 그런가?"
"아니, 몸이 안 좋아서 한의사도 침을 많이 놓지도 않았어."
"그런데 왜 이렇게 힘드실까? 우리 엄마가..."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어머니가 작은 목소리로 말씀을 꺼내셨다.
"아는 사람이 이번에 양로원을 운영하게 되었는데, 나도 들어오라고 하네. 거기 있으면 사람들하고도 만나고, 밥도 영양가 있게 잘 챙겨 준다고."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머니가 이런 고민을 하시는 것 자체가 나 때문인 것 같은 죄책감이 몰려왔다. 평소에 어머니께 자주 전화를 못 드리는 것도 나의 죄책감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어머니께 전화했을 때 혹여 아프시거나 지친 목소리가 들리면, 바로 달려가 보살필 수 없는 나 자신이 원망스럽고 죄스러워질까 봐 차마 전화를 하지 못했던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의 침묵도 그 감정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머니는 나의 마음을 이해하시는 듯 다시 말씀을 이어가셨다.
"들어가면 자식들 신경 안 쓰게 해 주고 좋은데... 거기 들어가면 다시는 못 돌아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선뜻 내키지가 않아."
예전에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살기 힘든 자식들이 늙은 부모가 병들어 돌봄이 필요하면 요양원이나 양로원에 부모를 입원시키고 한두 달은 잘 찾아뵙고 입원비도 잘 내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찾아오는 시간은 점점 뜸해지고, 결국엔 돈도 보내지 않는다고 한다. 기관에서는 보호자에게 전화해 보지만 연락이 닿지도 않는다고 한다.
나이 들어서 가장 무서운 것은 "쓸모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나이 들고 병들어 더 이상 자식들이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을 때, 사회에서도 내가 필요한 일자리가 없을 때. 노인들은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 점점 잊힐 것이라는 두려움에 휩싸이게 되고, 그 감정은 마음뿐만 아니라 몸도 아프게 한다.
"내 주변 나이 든 사람들이 하는 걱정이 다 똑같아. 몸은 아파서 할 수 있는 것도 없는데, 병원 다니느라 돈은 계속 나가고, 자식들에게 부담만 될까 봐. 죽지도 못하고 너무 오래 살까 봐. 그게 제일 걱정인 거야. 잠자다가 죽는 것이 가장 큰 복이지."
어머니의 마음속에 찾아온 두려움은 이렇게 마음을 다 뒤집어 놓는다. 어머니를 처량하고 불쌍하게 만들고,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아무것도 못 하게 만든다. 이런 걱정을 하고 계신 어머니를 보며 나도 어떤 시원한 해결책을 말하지 못한다. 아니, 애초에 이건 해결책이 없다. 한 시대를 살아 내시느라 고생하신 이분들을 사회도 자식도 책임져 주지 못하니 이 두려움은 온전히 이분들의 몫이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맞아. 부모가 몇 년씩 그런 곳에 가 있으면 매달 돈을 내는 것도 찾아가는 것도 힘들지. 자식은 무슨 죄가 있어. 지들 살기도 바쁘고 힘든 세상인데."
맞다고 고개를 끄덕일 수도, 아니라고 내가 엄마를 끝까지 지켜 주겠노라고 말하지도 못한다.
"아이고~ 걱정도 많으시네. 엄마는 아직 그런 곳에 안 들어가셔도 돼요."라고 말했지만
이 말이 어머니께 어떤 위로도 안 된다는 사실을 나도 잘 안다.
마치 어머니께 하는 변명처럼 느껴졌다. 그러면서 나는 나이가 들어 병들면 자식들에게 어떤 부모로 남고 싶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나도 엄마처럼 자식들에게 짐이 될까 봐 전전긍긍하면서 나의 두려움과 싸우고 있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덧 어머니 집에 도착했다.
어머니는 지금 걸음마를 배운 아기처럼 천천히 그리고 조심조심 걸으셨다. 원래부터도 눈이 잘 안 보이시고, 관절이 안 좋으시니 빨리 걷지는 못하셨지만 이제 거기에 심장이 조여 오는 증상까지 더해져 보도블록 두 개를 넘지 못하는 보폭으로 발을 내디디셨다. 행여 심장이 갑자기 뛸까 봐 한 손으로 가슴을 부여잡고 걸으시는 모습에 내 가슴이 먹먹했다.
어머니,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루를 살아내는 모든 사람은 존재하는 그 자체로도
사랑받기에 충분합니다.
그러니 어머니도 사랑받기에 충분한 사람입니다.
이 순간 나는 어머니와의 치유여행을 시작하기로 결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