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은 잘 끝났다. 그런데 수술이 모든 것을 되돌려주진 못했다. 몸속에 암세포는 제거됐지만 기력은 돌아오지 않았다. 수술을 거듭할수록 몸은 더 쉽게 주저앉았고, 전처럼 돌아오지 못하는 날들이 많았다. 원래도 말이 없었지만 말수는 더 줄고, 웃는 얼굴을 보는 일은 점점 드물어졌다. 거동이 불편해서 통원치료를 위해 병원을 다닐 때면 꼭 휠체어를 타야 했다. 휠체어를 타고 내리는 것을 돕다 보면 나도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이제는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외출 전에는 기저귀를 채워야 했고, 다녀오면 갈아주어야 했다. 한 번은 내가 기저귀를 갈아 줄 때 그 사람이 실수를 해서 나도 모르게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그 사람은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줄 알아?"라며 오히려 화를 냈다. 나의 놀란 소리가 그 사람의 마지막 자존심을 건드렸던 것 같아 미안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내가 뭘 잘못했다고... 고생하는 사람에게 고맙다고 말을 못 할망정, 왜 화를 내는 데...'라는 감정이 올라왔다. 그러면서 화내는 그 사람에게 아무 말도 못 하는 내 모습에 또 화가 났다.
외로움, 죄책감, 자괴감, 미안함, 분노, 우울함... 나를 비참하게 만드는 모든 감정들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나는 다른 방으로 가 소리 죽여 울었다. 시어머니의 치매 병간호 10년, 남편의 암 병간호 8년이 겹쳐 내 삶은 참담하게 느껴졌다.
아이들을 키울 때가 생각났다. 기저귀를 갈아줄 때 오줌이라도 싸면 그 모습이 귀여워서 깔깔깔 웃었던 기억. 첫걸음마를 뗄 때 환호하면서 손뼉 치던 기억. 길을 걸을 때면 꼭 내 손을 붙잡고 가던 기억. 어린아이와 노인의 모습은 데칼코마니처럼 닮았는데 보호자의 마음은 완전히 달랐다.
퇴원 후 집에서의 생활, 통원 진료 뭐 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 요양사가 와서 도움을 주었지만 보호자로서 나도 함께 지쳐가고 있었다.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갔다. 병원에서도 더 이상 할 것이 없다고 한 그 사람을 자식들은 요양병원에 모시자고 했고,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결국은 내가 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집에서 가까운 요양병원에 입소하면 나도 아침저녁으로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아서 그 사람에게 이야기를 했다.
"내가 아침마다 갈게요.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이 동네에서는 제일 크고 깨끗하다고 하니까 한 번 가 봅시다."
그 사람은 아무 말도 없었다. 그런 사람을 차에 태워서 요양병원에 데리고 갔다. 마음 한 구석에는 납치해서 끌고 가는 것처럼 죄책감이 밀려왔다. 병원에 도착해서 상담을 받고, 병실로 갔다. 병실에 처음 들어가는 순간 쾌쾌한 냄새가 내 코를 찔렀다. 그것은 버려진 몸과 희망 없는 시간이 뒤섞여 나는 무거운 냄새였다. 내 얼굴은 저절로 찡그려졌고, 이 공간에 그 사람을 남겨두고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흘렀다.
"여보, 아침에 일어나서 금방 올게."
그 사람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이런 곳에 자기를 남겨 두고 간다는 것에 강력하게 항의라도 하듯 내 말에 아무 반응이 없었다. 난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도, 집에 도착해서도 계속 눈물을 흘렸다. 그 사람이 없는 집은 유난히 쓸쓸했고, 병든 노인을 버리고 왔다는 죄책감은 나를 더 힘들게 했다. 마지막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분노와 절망과 두려움의 눈빛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자는 듯 마는 듯 나는 긴 밤을 새웠다.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약을 챙겨 먹고, 요양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도착해서 병실까지 가는 엘리베이터가 한없이 느리게 느껴졌다. 문이 열리자마자 난 병실로 잰걸음을 걸었다. 잠은 잘 잤는지, 밥은 잘 먹었는지, 아프지는 않았는지 궁금한 것이 많았다.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그와 눈이 마주쳤다. 아직 빗지 않은 머리와 부은 얼굴, 반쯤 뜬 눈, 미세하게 쉬는 숨소리까지 느껴졌다.
"잘 잤어요? 아침은 먹었고?" 난 애써 미소 지으며 물었다.
그 사람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돌렸다. 단단히 삐져서 밥을 먹지 않겠다며 고개를 돌리던 첫째 아이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하지만 그 사람의 모습은 애처로웠고, 슬펐다. 옆에 있던 요양보호사가 대신 말을 했다.
"잘 주무셨슴다. 기저귀도 갈아끼웠슴다. 아침은 조금밖에 안 드셨슴다."
6인실에서 6명의 환자를 보는 남자요양보호사였다. 말투를 보니 조선족인 것 같았다. 병원에 고용되어 밤새 6명 환자의 기저귀, 식사 등을 챙기는 보호사였다.
"아이고, 애쓰셨어요. 감사합니다."
나는 고개를 천천히 숙이면서 최대한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 첫째가 학교에 처음 입학할 때 담임선생님께 했던 그 마음으로 우리 남편을 잘 부탁드린다는 마음을 담아서 인사를 건넸다.
나는 보호자 의자에 앉아 남편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눈을 보며 다시 말을 걸었다.
"하루 안 보니까 많이 보고 싶더라. 당신도 나 보고 싶었어?" 목이 매였지만 씩씩하게 말을 걸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아무 말도 없었다. 고개는 다시 돌리지 않았지만 눈을 감았다. 난 계속 손을 놓지 않았다. 잠시 고요함이 흐르고 남편이 입을 뗐다.
"집...에 가...고...싶...어. 데려가...줘."
기운 없는 목소리였지만 알아들을 수 있었다. 코끝이 찡해졌고, 참았던 눈물이 흘렀다.
"그래요, 가요. 갑시다."
유치원에서 집에 가겠다며 떼쓰며 울던 아이를 떼놓고 올만큼 매정했던 내가 이 사람에게는 며칠만 더 있어보라고 말하지 못했다. 그날 짐을 싸서 다시 집에 왔다. 집에 오자마자 목욕탕으로 가서 그 사람을 씻겼다. 병실에서 나던 그 냄새를 그 사람 몸에서 지우고 싶었다. 아니, 어쩌면 잠시나마 그 사람을 버렸던 나의 죄를 씻어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의 지옥 같은 휴식은 하루도 안 되어 끝이 났다.
연재가 끝나지 않았지만 개인적인 건강 이슈가 있어서 그동안 글을 못 올렸습니다.
혹시라도 기다리신 분이 계셨다면 죄송한 마음을 전합니다.
앞으로 계속 연재를 이어 가겠습니다.
오늘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