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을 마치고 퇴원한 그는 입맛을 잃었다. 6번의 항암치료가 이어지면서 몸은 점점 지쳐갔다. 머리카락이 빠지고 몸이 힘들었지만 살고자 하는 의지만큼은 꺾이지 않았다. 일흔이 다된 나이였지만 정신만큼은 청년이었다.
"환자분의 생존 의지가 대단하세요. 이렇게 빨리 회복하시는 분은 처음 봅니다. “
담당 의사도 놀라워했다.
2년이 지나 대장암 완치 판정을 받았다. 키는 작았지만 그는 당당했다. 어린 시절부터 모진 삶을 견뎌온 사람에게 암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완치의 기쁨도 잠깐, 그는 다시 쓰러졌다. 육종암이었다. 하나의 숙제를 겨우 끝냈는데 다시 또 다른 숙제를 받은 기분이었다. 이 숙제를 끝내는 데는 또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었다. 절망할 틈도 없이 수술대에 올라야 했다.
간, 위, 횡격막... 암세포는 몸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수술하고 방사선 치료받고, 전이되면 다시 수술하고... 우리는 암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암을 따라다녔다. 암세포가 나타나면 그곳을 계속 잘라내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몸은 점점 망가져갔지만 삶에 대한 집념만큼은 놓지 않았다. 버티고 또 버텼다. 기억력이 떨어지고 기운이 빠져도, 길에서 쓰러지고 피를 토해도 끝까지 싸웠다. 그렇게 8년을 더 버텨냈다.
시어머니 치매 간병 9년, 남편 암 간병 10년. 나의 중년은 그렇게 흘러갔다. 긴 병에 장사 없다는 말이 맞았다. 몸무게는 20kg 가까이 빠지고 해마다 몸이 망가져갔다. 목디스크, 무릎 관절 수술, 황반변성... 시력은 점점 잃어갔고 목과 어깨, 팔의 통증은 잠을 이룰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나를 가장 괴롭힌 것은 죄책감이었다. 젊은 시절, 그가 어렵게 번 돈을 친정 식구들을 위해 썼다. 아버지 사업이 망해 길거리로 내몰린 가족을 모른 척할 수 없었다.
"우리도 어려운데 친정까지 도우면 우리도 망해."
그가 나를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몰래 돈을 구해 아버지께 빌려드리고 집을 구하고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도와드렸다.
그에게 돈은 가장 두려운 것이었다. 가난은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깊은 상처였다. 내가 그 상처를 건드렸으니 그는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이 불안이 결국 암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내가 그를 망쳤다는 죄책감에 눈물을 흘리는 날이 많았다.
하루는 그에게 용서를 구했다.
"여보, 미안해. 내가 속 썩여서 당신이 이렇게 된 것 같아서 너무 미안해."
"..... "
그는 입을 꾹 닫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강하게 긍정하는 듯했다.
목이 메었다. 하지만 그 앞에서 눈물은 보이지 않았다. 아픈 사람 앞에서 눈물을 보이면 더 약해질까 봐 꾹 참았다.
'약해지지 말자. 죽을힘을 다해 살아남아야 해. 내가 버텨야 저 사람을 돌볼 수 있어.'
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암세포는 죽여도 죽여도 다시 살아났고, 그 사람을 살리겠다는 나의 의지도 다시 살아났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