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맺힌 날은 계속되었다. 허리가 아파 병원에 갈 때, 그 사람은 차로 데려다주었다. 그러나 병원 주차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다음부터는 대중교통을 타고 가라고 했다. 허리가 아파서 잘 걷지도 못하는 내 불편보다, 좁은 주차장에 차를 대야 하는 자신의 불편이 더 컸던 것이다. 나는 오기로 혼자 버스를 타고 병원에 다녀왔다. 그러다 허리가 더 아파졌고, 결국 그다음에는 가지 않았다. 계속 아파하는 나를 보며 그 사람은 물었다.
"병원엔 왜 안 다녀?" 그 말을 듣고 난 구구절절 설명하고 싶지 않아서,
"됐어요. 다녀도 낫지도 않아요."라고 말하고 몸을 돌렸다. 나는 그 사람에게 기대거나 아쉬운 소리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사람이 오른쪽 다리와 팔이 찌릿하게 저린다고 했다. 평소처럼 밖에서 일을 많이 해서 그런가 싶었다. 그는 아프다고 방에 누웠지만, 나는 일부러 가보지 않았다. "많이 아파요? 병원에 갈래요?" 내 말은 걱정보다는 차가운 심문에 가까웠다. 내가 받은 대로 되돌려주고 싶었다. 그도 아파봐야, 내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침 주말이라 딸과 사위가 집에 와 있었고, 남편은 몸이 불편하다며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사위가 방에 들어갔다 나오더니 조용히 말했다. "병원에 가보셔야 할 것 같아요." 나는 그제야 조금 걱정이 됐다. 하지만 크게 아픈 건 아닐 거라고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토요일 저녁이라 동네 병원은 문을 닫은 상태였고, 결국 우리는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MRI를 찍자는 의사의 말에 잠시 고민이 있었다. 뇌에서 원인을 찾으면 보험 적용이 되고, 아니면 비용이 많이 든다는 설명이 있었다. 남편 입장에서는 어느 쪽도 달가울 게 없었다. 하지만 사위가 "이왕 온 거 그냥 찍어요"라고 말하자 그는 조용히 따랐다.
기다림 끝에 의사가 나왔다. "촬영 결과, 뇌경색 소견이 보입니다. 당장 수술이 필요한 상황은 아니지만 추가 검사가 필요합니다." 내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감기 한 번 제대로 앓지 않던 사람이었다. 누워 있는 모습조차 생소했던 그가, 뇌경색이라니. '당신도 아파봐야지.' 예전의 내 말이 화살처럼 되돌아와 내 가슴을 꿰뚫는 것 같았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나는 내내 나 자신을 자책했다.
그날 이후 남편은 병원 검진과 물리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 옆에 함께 있었다. 내가 아플 때는 눈길조차 주지 않던 사람이 이제는 자신의 증상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좋다는 병원, 명의가 있다는 곳을 스스로 찾아다녔다. 서운함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날 내가 던졌던 말을 죄처럼 여겼기에 그의 곁을 지켰다.
검진 중 다리가 저리고 가끔 혈변도 본다는 그의 말에, 의사는 대장내시경을 권했다. 평소 치질로 고생은 했지만 대장검사를 받은 적은 없었다. 우리는 예약을 했고, 나는 병원 로비에서 기다렸다. 20~30분이면 끝날 거라고 했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기다렸지만, 30분이 지나도 그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우리보다 늦게 들어간 사람들까지 모두 나왔는데, 남편만 보이지 않았다. 접수처에 문의하자 간호사가 검사실로 들어갔고, 잠시 후 그녀는 나와 말했다. "할아버지께서 용종이 너무 많아서요. 현재까지 28개를 제거했는데, 아직 더 남아 있어요.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그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 사는 게 바빠서,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어려워 남편의 건강검진 하나 챙겨주지 못한 것이 미안했다. 손에 땀이 났고, 가슴은 다시 조여왔다. 얼마 후 의사가 나를 불렀다. "그동안 대장검사를 한 번도 안 받으셨나요?" "네…" "현재까지 서른 개 정도 제거했는데요, 큰 용종 하나가 남아 있어 수술로 제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거한 용종은 정밀검사에 들어갑니다. 외래 예약 후에 결과를 들으러 오시면 됩니다."
무거운 마음으로 자리를 떴다. 뇌경색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또 다른 큰 병의 그림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최대한 담담하게 말했다. "아직 모르는 거예요. 정밀검사 해보고 걱정해도 늦지 않아요." 그러나 그 사람은 아무 말이 없었다. 평소 강해 보이던 그의 모습은 사라지고, 도축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작고 쓸쓸해 보였다. 그의 병은 나의 작은 병을 잊게 만들었다. 오른팔이 저리고 시야가 흐려지는 내 증상은 애써 외면했다.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가기 전까지, 나는 그의 곁을 지켰다.
진료 당일, 아들과 딸도 모두 병원으로 모였다. 나는 병원 예약 시간이 무색할 만큼 진료가 늘 늦어진다는 것에 불만이었지만, 그날만큼은 예외였다. 오히려 시간이 더 걸렸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그날은 오히려 시간이 더 빨랐다. 이름이 불렸다. "임한태(가명)님, 들어오세요." 나는 손에 쥐고 있던 묵주를 더 꽉 쥐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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