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편이 되어주지 못한 남-편

통장을 펼치고 그 사람을 이해하게 되었다

by 솔솔솔파파

결혼 후 아이를 낳고, 나는 봉천동 달동네에 남겨졌다. 남편은 인천 가게에서 생활하며 집에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여전히 친정 일을 돕고 있는 나를 못마땅하게 여긴 그는 어느 날 마지막 경고처럼 말했다.


“지금 우리도 살기 힘든데, 친정 식구들 도와주면 우리 모두 죽는 거야. 알아? 시집왔으면 제발 우리 집 일만 신경 써.”


무슨 말인지는 알았다. 하지만 그렇게는 할 수 없었다.

남의 집 처마 밑에 이불 홑청으로 지붕을 만들어 밤이슬을 피해 자고 있는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여섯 동생들이 있는데… 어떻게 나 혼자만 따뜻한 이불속에서 잠을 잘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모른 척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게 나는 혼자 달동네에서 아이를 키웠다. 돈이 없어서 끼니마다 밥에 오이지 한 조각을 올려 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뜻밖에 시아버지가 오셨다.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에 궁금해서 오신 길이었다. 나는 당황했지만, 시아버지는 뜻밖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우리가 살던 전라도 광주에 미군기지가 있었제. 나는 일 나가면 몇 주씩 못 들어오니께, 한태가 국민학교 3학년 때였을까, 먹을 것이 없으니께, 미군 기지 가서 초콜릿이랑 과자, 먹다 남은 짬밥 같은 것을 얻어왔어. 그럼 과자는 동생들 나눠주고, 짬밥은 물 많이 넣고 죽 끓여서 가족들 먹이고. 그런 아이여. 생활력이 억세게 강했지.

4학년 때는 평택 기지로 가는 미군 따라 무작정 서울로 올라갔제. 구두닦이, 아이스께끼 장사, 신문팔이... 안 해본 일이 없더라고. 잘 곳도 없어서 공장 바닥이나 길바닥에서 잤고. 그렇게 벌어서 돈 모은 기여."


그 시절, 모두가 어려웠지만 이 사람은 그중에서도 더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한 사람이었다. 나는 그래도 아버지가 사업을 하셨고, 한때는 넉넉한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이 사람은 단 하루도 그런 날이 없었던 것 같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통장 세 개를 툭 던져주고 갔다. 펼쳐보니 매일매일 1원, 3원, 5원… 적은 금액들이 빽빽하게 찍혀 있었다. 그 통장을 보며 시아버지 이야기가 떠올랐다.


정말 얼마나 악착같이, 얼마나 절박하게 돈을 모았는지 입금 내역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돈으로 산 땅을, 우리 아버지가 날려버렸다는 사실… 그 사실 앞에서 남편은 얼마나 허탈하고 분했을까. 그 뒤로 내가 또 친정을 도운답시고 보증금을 빌려주고 못 받았으니, 그는 얼마나 속이 끓었을까. 그 사람에게 돈은 곧 생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돈이 없어진다는 건 그에게 곧 ‘죽음’이었다.


그걸 알게 되니, 남편에 대한 분노가 조금 줄어들었다. 하지만 나 역시 멈출 수 없었다. 아버지의 처진 어깨를 보면 참을 수가 없었다. 집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혹시 또 친정일로 전화 왔나?’ , ‘또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그때마다 손은 떨렸고, 남편의 눈빛은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그의 눈길은 날카롭고 매서웠다. 아마 그도 두려웠을 것이다. 살기 위해서, 자기 삶을 지키기 위해 나를 겨눈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서로 다른 길을 걸어야 했다.


서로의 삶을 이해하지 못한 채, 자기 자리에서 버티느라 필사적이었던 두 사람.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


다음 편에 계속.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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