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한(恨)을 품었다

by 솔솔솔파파

자기 어머니만 귀하게 여기는 그 사람이 미워서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때, 나는 아이들을 두고 무작정 친정으로 도망쳤다. 그러면 매일같이 남편은 처갓집에 찾아와 집에 가자고 나를 설득했다. 자기 잘못을 알아서인지, 아니면 자신의 어머니가 고생하는 게 보기 싫어서인지 알 수는 없지만,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출근 도장을 찍었다.

그런 보복성 도망은 1년에 몇 번씩 있었다. 그것은 나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발악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셋째 아이를 낳고 난 어느 날, 동네 할머니 한 분이 우리 집에 오셨다.

“혹시 저 아래 세탁소 옆집 알지? 거기 남자가 마누라가 집 나가서 혼자 아들을 키우는데, 이제 도저히 혼자 못 키우겠나 봐. 요즘 동네 돌아다니면서 누구 아이 좀 맡아줄 사람 없나 묻고 다니더라고.”

그 순간, 마음속에서 ‘쿵’ 소리가 났다. 그 집 아이는 이제 두 돌 때쯤 되었을 것이다. 얼굴이 하얗고, 눈이 크고, 아주 예쁘고 귀엽던 아이였다.

나는 내 품에 안겨 있던 막내를 바라보았다. 나를 보며 해맑게 웃는 아이의 얼굴을 보고는 결심했다. “다시는 너희들을 두고 친정에 가지 않겠다.”
아니, 다시는 그 어디에도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시집온 이후, 이상하게도 심장이 조여 오는 병을 앓기 시작했다. 병명은 없었다. 하지만 친정에 무슨 일이 생기거나, 남편이 며칠씩 말을 하지 않기 시작하면, 심장은 쿵쿵 뛰고 숨이 가빠왔다.

어느 날은 입이 돌아가는 안면신경마비 증상이 와서, 급히 한의원에 갔다. 나이 지긋한 한의사 선생님이 진맥을 하더니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물었다.


“남편이 바람 펴요?”
“아니요.”
“그런데 어떻게 사람을 이렇게 만들어요? 내일 꼭 남편하고 같이 오세요.”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 사람이 여길 나랑 같이 올 리가 없지…’
하지만, 병원에 함께 갔던 친정엄마가 남편에게 전했다.

“자네 꼭 같이 가보게. 선생님이 꼭 같이 오라고 하시더군.”

다음 날, 뜻밖에도 남편이 같이 따라나섰다. 한의원 진료실, 선생님 앞에 마주 앉았다.

“혹시 당신 부인이랑 같이 안 살 생각입니까?”
“... 아니요.” 남편은 갑작스러운 질문에 끝을 흐리며 대답했다.

“그럼, 이렇게 살게 하면 안 됩니다. 이분의 병은 마음에서 시작된 병이에요. 지금처럼 하면, 곧 큰 병이 될 겁니다. 오래 같이 살 거면 지금부터라도 달라져야 해요.”


그날, 나는 처음으로 누군가 내 편이 되어준 것 같아 가슴이 찡했다. 하지만 남편이 그 말을 듣고 변할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가 다시 친정에 가지 않았고, 남편도 화날 때 말하지 않는 버릇이 없어졌다. 가끔 나타나도 예전처럼 길지 않았다.


우리는 계기는 달랐지만, 그렇게 각자의 이유로 폭주하던 감정을 멈추고 잠시 숨을 골랐다. 그 사이 아이들은 우리 사이를 더 말랑하게 해 주었다. 친정도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고, 밤낮없이 일하던 우리 삶도 조금씩 숨통이 트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기둥이 쓰러졌다. 내가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고, 의지하던 아버지가 쓰러지신 것이다.

간경화였다. 배는 산처럼 부풀어 오르고, 얼굴은 점점 누렇게 변해갔다. 몇 개월 뒤,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셨다. 그분은 내가 살아온 이유였고, 버텨온 이유였고,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아버지가 없는 세상이라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며칠이고 아버지 사진을 품고 울었다. 밥도 먹지 않고, 잠도 자지 않고… 그렇게 울었다. 남편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고맙게도, 아버지가 아프셨을 때 남편은 내색은 없었지만 진심으로 신경을 써주었다. 병원비도 내주었고, 봉투에 용돈을 따로 넣어 아버지께 드리기도 했다.


나는 알고 있었다. 남편이 돈을 얼마나 아끼는 사람인지. 그 모든 행동이 얼마나 큰 결심이었는지. 그렇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내 몸은 한 번 더 무너졌다. 안면마비 증상은 조금만 스트레스가 쌓이면 다시 찾아왔고, 심장은 여전히 불안하게 뛰고 조였다. 긴 병에 효자 없다고 했던가? 긴 병에는 남편도 없었다. 매일매일 아프다고 해도, 이제는 무덤덤했다. 병원은 당연히 혼자 갔다. 당일 수술도 아무 말 없이, 혼자 받고, 혼자 회복했다. 억울하고, 속상해서 “같이 가자”는 말조차 꺼내지 않았다. 그 사람에게 아픈 아내는, 병원비만 드는 골칫덩이일 뿐이었다.


나는 속으로 이렇게 다짐했다.
“좋아. 어디, 너도 한 번 아파봐라. 그때 나도 당신처럼, 그 눈빛으로, 똑같이 바라봐 줄 테니까.”

내 안의 서러움은 그렇게 독기를 품어 한(恨)으로 맺혔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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