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어낸 용종을 가지고 정밀 검사를 했습니다. 대장암 2기에서 3기 사이 정도 되네요. 이런 경우 보이는 부분만 제거하면 다른 부분에서 재발할 수 있어서 대장 전체를 들어내야 합니다."
설마 설마 했지만 결국 듣고 싶지 않았던 소리를 듣게 되자 나의 심장은 더 크게 뛰었다. 그 사람은 말이 없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살려달라'는 말도 없었고, '수술하면 나을 수 있냐'는 물음도 없었다. 모든 것을 예상했다는 듯 덤덤했다. 그 방 안에서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사람은 딱 둘, 의사와 남편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얼굴에 내린 무거운 그림자를.
"그럼 이 다리는 어떻게 고쳐줄 수가... "
그 사람은 당장 불편한 저린 다리를 고칠 수 없는지가 더 궁금했을까, 아니면 주어진 현실을 도피하고 싶었을까. 계속해서 의사에게 다리를 고쳐달라고 떼를 쓰듯 말했다.
"할아버지, 지금 그 다리가 문제가 아니에요. 대장 전체를 잘라 내는 수술을 하셔야 하고, 용변 주머니를 차고 사셔야 해요."
"그럼, 수술하면 이 다리 저린 것은 없어질까요?"
남편은 집요하리만큼 다리에 집착했다. 답답함과 짜증남의 그 중간 어딘가에 표정을 짓던 의사가 차분히 말했다.
"방법은 딱 하나 있습니다." 갑자기 방안이 조용해졌다.
"다리를 잘라 내시면 됩니다."
그 말에 그 사람의 짧은 희망은 사라졌고, 학교 선생님에게 혼나서 실망한 학생처럼 고개를 숙였고, 나는 화가 나서 고개를 숙였다. 다시 되돌릴 수 없는 병을 되돌려달라고 떼쓰는 환자에게도, 통증을 없애려면 다리 전체를 잘라 내주겠다는 의사에게도 화가 났다. '그럼 두통이 있는 환자는 머리를 잘라야 하나요?'라고 묻고 싶었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분노, 죄책감, 상실감, 막막함. 이 모든 감정을 고스란히 가지고 진료실 밖으로 나왔다. 다리에 힘이 풀려 잠깐 의자에 앉았다. 자식들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 입에는 침이 말랐고, 손은 미세하게 떨렸고, 다리에는 힘이 풀리고, 심장만 세차게 뛰었다. 내 사지에 문제가 생긴 것을 알아챈 심장이 죽을힘을 다해 뛰고 있었다. 그 어느 것 하나도 잃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뛰고 있었다. 그렇게 뛰면 자신도 위험해질 텐데... 하지만 심장은 뒷일은 걱정하지 않고 앞만 보며 달리는 것 같았다.
내가 사랑했던 아버지가 처음 간경화 판정을 받았을 때도 이랬다. 나는 힘이 빠진 손을 남은 힘을 쏟아 꽉 쥐었다. 나는 이 사람의 심장이 되어야 한다. 기운 없이 풀 죽어 있는 사람이 다시 힘낼 수 있게 내가 뛰어야 한다.
수술을 위해 병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우리가 판정을 받았던 상급병원은 의사가 미국 세미나 참가 일정이 있어서 수술 날짜를 빠르게 잡을 수 없었다. 병원을 수소문했고, 대학병원이 아닌 2차 병원을 찾았다.
이곳의 장점은 명확했다. 병원장을 지인을 통해 알았고, 담당의사가 빠른 수술을 해 줄 수 있었으며, 다리 고통을 없애려면 다리를 자르라는 무책임한 말을 하지 않았다. 담당 의사는 가족처럼 친절했으며 진정으로 환자의 입장에서 고민하고 배려하며 말했다.
"아이고, 많이 힘드시겠어요. 사진을 보니 큰 사이즈의 혹이 있는 게 맞고요. 이런 경우 상급병원에서 들은 것처럼 대장 전체를 제거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어르신 나이도 있으시고, 용변 주머니를 차고 사시는 게 많이 힘듭니다. 삶의 질이 많이 떨어져요.
그래서 저는 이런 경우 부분 절제를 권해드립니다. 젊은 사람들의 경우에는 전체 절제도 권하지만 나이가 많으신 경우에는 재발보다는 사시는 동안 편안하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하거든요. 환자분이 제 아버지이고, 제가 수술을 해야 한다면 저도 부분 절제를 했을 것입니다."
담당의사의 말은 조심스러웠지만 분명했고, 따뜻했다. 여러 가지로 지쳐있는 나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되었다. 특히 마지막 말 "환자분이 제 아버지이고..."은 그 의사를 의지하고 신뢰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렇게 수술을 받았고, 그때부터 나와 그 사람과 암의 불편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