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은 엄마 드려라

by 솔솔솔파파

그 사람이 아프고 나서 나의 삶은 매일 똑같이 반복되었다. 일어나서 그 사람의 안녕을 묻고, 아침을 준비하고, 함께 아침을 먹고, 나와 그 사람의 약을 챙기고, 집을 청소하고, 병원 가는 스케줄이 있는지 체크한다.

새로운 아침은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로 가득해야 하지만 나는 아무런 기대 없이 매일 아침 눈을 떴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를 책임감으로 보냈다. 내 몸도 아프지만 더 아픈 사람의 몸을 살펴야 했기에 나는 최대한 아무 생각 없이 해야 할 일에만 집중했다.


희망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 채 그 사람을 돌봤다. 한 때는 내가 열심히 하면 나을 수 있다는 희망도 있었지만 나이도 많이 들었고, 계속되는 수술과 항암치료로 지쳐가는 그 사람을 보면 희망은 조금씩 꺼져갔다. 그래도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의 몸도 더 이상 버틸 수 없다고 신호를 보내왔다. 황반변성으로 한쪽 눈이 점점 흐릿해졌다. 병원 치료는 나빠지는 속도를 늦출 뿐 다시 예전 시력을 회복할 수는 없었다. 저릿한 어깨는 검사 결과 목디스크에서 오는 것임이 밝혀져 목디스크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나의 수술 날짜는 남편의 항암치료 기간과 건강상태가 좋을 때를 예상해서 잡았다. 수술 날 나는 남편이 먹을 것을 챙겨두고 몇 번이고 일러두었다.


"아침 드시고, 1번 약 드시고요. 점심 드시고는 1번과 2번 약을 드셔야 해요. 저녁에 자기 전에는 3번 약 꼭 잊지 마시고요. "

알록달록한 약이 뭐가 이리도 많은지... 밥 먹는 양이랑 비슷했다. 나이 들면 식사는 줄고, 약은 늘어난다고 하더니 딱 그 꼴이었다. 혼자 두고 가는 것이 불안했지만 딸이 아침저녁으로 들른다고 해서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병실에 누워 있지만 온통 내 걱정은 그 사람뿐이다. 밥은 먹었는지 약은 순서대로 잘 챙겨 먹었는지... 어린아이를 집에 혼자 두고 온 것처럼 불안했다.


수술 들어가기 전 아들이 와서 수술 동의서에 사인을 한다. 혼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안 깨어나도 좋지 않을까? 그냥 이대로 잠자듯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세상에 대한 미련은 없었다. 딱 하나 그 사람을 두고 가는 것이 마음에 걸릴 뿐. 더 살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이런 생각을 하며 나는 잠이 들었고, 잠시 뒤 눈을 떴다. 형광등 불빛이 보였고, 간호사의 목소리도 들렸다. 하느님은 지은 죄는 다 갚고 가라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나를 살려주셨다. 감사함과 원망스러움이 섞여 눈물 한 방울이 흘렀다.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다. 살고 싶었을지 이 지겹고 고단한 삶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는지...

정신이 들면서 그 사람 걱정부터 다시 들었고, 옆에 있는 아들에게 물었다.


"아빠는? 별일 없으시지?"

"무슨 별일이 있어요. 수술 들어가시기 전에도 확인하고 들어가셨으면서... 하루도 안 지났어요. "

내게는 수술이 삶과 죽음을 가르는 긴 여행 같았는데, 실제 시간은 고작 네 시간 남짓이었다. 나는 일반 병실로 옮겨졌고 회복을 위해 며칠간의 입원이 필요했다.


그 사람은 내가 걱정된다며 본인이 간병을 자처하고 나섰다. 나는 괜찮다고 거절했지만 그 사람은 엄마랑 떨어지는 게 무서운 아이처럼 내 옆을 지키려 했다. 보호자 자격으로 간호를 하며 병원에서 잠을 잤다. 아픈 사람을 보호자 침대에 재울 수 없어서 나는 그 사람을 환자 침대에 눕히고, 내가 보호자 침대에서 잤다. 회진을 돌던 의사 선생님은 나를 보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환자분, 이러다가 환자분이 더 먼저 가시겠어요. 남편분은 집에 가서 주무시라고 하세요."

나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고집이 세서 절대 말을 안 들어요. "

같은 병실에 있던 다른 보호자들은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너무 걱정하고 사랑하셔서 그렇다고 하지만 나는 그것을 그냥 '고집'이라고 한다. 그 '고집' 때문에 내 한평생 고생한 것을 이야기하면 삼일 밤낮도 모자라다.


그런데 하루는 남편의 상태가 안 좋아졌다. 열이 나고 기운이 없고 자꾸 혈변을 보았다. 결국 그 사람은 내가 입원한 병원의 응급실에 들어갔다. 항암치료로 인한 컨디션 난조였지만 휴식이 필요하다는 소견을 받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예정보다 일찍 퇴원을 했다. 의사는 말렸지만 나는 여기에 더 있다가는 둘 다 안 좋아질 것 같다고 말하고는 도망치듯 퇴원을 했다.


얼마 후 남편은 다시 쓰러져 입원을 했다. 다시 수술을 해야 한다는 의사의 소견이 있었다. 내가 병원에 갈 수 없어서 아들이 병원을 지켰다. 하루는 병원에 갔다가 아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몰래 듣게 되었다.

"얘야, 이번에 아빠가 수술 들어가서 혹시 못 깨어나면 네가 엄마를 잘 챙겨야 한다. 그리고 아빠 펀드 통장이 침대 옆 아빠 금고에 있으니까 그것도 잘 챙기고. 그리고 무엇보다 혹시 아빠가 혼수상태에 빠지면 아빠 눈을 엄마에게 주었으면 좋겠어. 엄마 눈이 점점 더 안 보여서 걱정이야. 내 눈은 아직 잘 보이니까 엄마 드리면 괜찮지 않을까? “

"아빠, 그런 일 없으니까 수술이나 편안하게 잘 받으세요. 그리고 엄마를 그렇게 걱정하시면 평소에 엄마한테도 표현 좀 하세요. “


그 이야기를 듣고 목이 메고 눈물이 났다. 나한테는 ‘고생한다’, ‘고맙다' 말 한마디도 안 하는 사람이었다. 무심하고 무뚝뚝하기만 했던 사람이었기에 나를 미워한다고만 생각했다. ‘고집'인 줄 알았는데 어쩌면 '사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그 사람에게 더 미안해졌다. 내가 친정 때문에 속 썩이지만 않았어도 어쩌면 저 사람에게 많이 사랑받고 살았을 텐데... ‘내가 저 사람을 힘들게 했구나’하는 죄책감이 밀려왔다. 난 ‘당신 눈 안 줘도 되니까 더 오래 살아줘요.’라고 말하지 못했다.


다음 날 그 사람은 수술실에 들어갔고, 나의 기도는 또 시작되었다.


"주님, 이번에도 수술을 받고 무사히 가족 품으로 돌아오게 해 주세요."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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