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하게 죽는다는 것

by 솔솔솔파파

다시 그 사람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요양병원에 두었을 때보다 마음은 편했으나 내 몸은 점점 말라갔다. 1년 사이 체중은 20kg 넘게 빠졌고, 팔다리도 점점 가늘어졌다. 그래도 버텨야 했다. 내가 무너지면 그를 돌볼 사람이 없었다.


오랜만에 집에 온 지인들은 수척해진 나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아니, 얼굴이 이게 뭐야."


그 말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이상했다. 슬프지도 않았고, 스스로가 불쌍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눈물이 흘렀다. 그 사람이 안쓰러워 운 날은 많았지만, 내 처지가 서러워 운 날은 없었다. 그런데 그 한마디가 나를 무너뜨렸다.


요양병원에 다녀온 후 그 사람은 더 약해졌다. 각종 수치들이 위험신호를 알렸다. 며칠 버티다 결국 동네에 있는 종합병원 응급실에 갔다. 피검사, CT, 엑스레이 등 각종 검사를 했다. 검사 결과 큰 병원으로 가는 게 좋겠다고 하여 다시 응급차를 불러서 다니던 대학병원 응급실에 갔다. 진료의뢰서와 검사결과지 등을 가지고 갔으나 똑같은 검사를 또 받았다. 혈관도 찾기 어려운 팔에 주사바늘을 계속 찔러댔다. 응급실에 가면 언제나 있는 일이지만 하루 사이에 똑같은 검사를 여러 번 하면서 지쳐가는 그 사람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새벽을 보내고 있을 때, 의사는 나를 불렀다.


"환자 상태는 혈압과 당 수치가 갑자기 올라가 일시적으로 일어난 증상으로 보여집니다. 우선 응급조치를 다 하였고, 깨어나시면 퇴원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퇴원이요? 입원해야 하지 않을까요? 저러고 집에 가시면 또 나빠지셔요."

"지금 상태에서는 입원하셔도 저희가 해 드릴 것이 없습니다.“


의사가 이 말을 하는 경우는 두 가지다. 병이 완쾌되었을 때와 치료 방법이 없어서 포기할 때이다. '해 드릴 것이 없'다는 말은 병원에서 듣는 고마운 말이자 가장 무서운 말이었다. 우리에겐 어떤 경우인지 나는 알고 있었다.


결국 처음 수술을 받았던 병원으로 옮겨 입원했다. 하루 종일 응급실을 돌다 병실에 도착했을 때,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 의료진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덜 불안했다. 하루 사이에 3개 병원, 3개의 응급실, 3번의 응급차를 탔다. 길고 긴 하루였다.

그 사람은 입원을 하고 수혈을 받으면서 조금씩 안정을 취해갔다. 나도 병원에 있으니 마음이 편안했다. 실시간으로 환자의 상태를 체크해 주는 의료진이 있으니 응급한 상황에도 빠르게 대처할 수 있었다.

폭풍이 몰아친 후 잠잠해진 바다처럼 우리는 일상적이면서도 조용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병원 생활이 길어지면서 그 사람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9년이라는 시간을 병마와 싸우느라 몸도 마음도 너무 지쳐보였다.


"여보, 당신 나 때문에 암에 걸린 것 같아서 너무 미안해요.“


눈을 뜨고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는 그에게 마음속 깊숙이 자리 잡은 나의 죄를 고백했다.

"내가 당신 속 많이 썩여서 그 스트레스 때문에 그런 것 같아. 나 용서해 줄래요? 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은 안 했지만 아직도 나를 원망하는 듯 느껴졌다. 서운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내 잘못이라 생각했다.


말 수가 점점 줄어갔지만 고통스러울 때는 말을 꺼냈다.


"나 아파, 진통제 좀 줘."

"아까 먹었어요."

"안 먹었어. 빨리 좀 줘."


기억력마저 흐려져 갔다. 몇 시간 전의 상황에 대해서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했다. 진통이 오는 간격이 점점 짧아졌고, 말이 점점 더 어눌해졌으며, 팔다리의 힘이 점점 더 약해졌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 날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입원 한 달째 되던 날, 병원 행정실에서 불러서 1층에 내려갔다. 연명치료에 대해서 물었다. 우리는 예전부터 연명치료를 안 하겠다고 이야기를 나눈 터라 연명치료 거부 의사를 밝혔다. 담당자는 다시 한번 나에게 설명했다.


"보호자님, 보통 보호자분들이나 환자분들이 건강하실 때 연명치료 거부 의사를 밝히십니다. 그런데 막상 큰 일을 겪고 나면 다들 연명치료를 안 하신 것을 후회하십니다."


"연명치료를 해서 다시 건강해질 수만 있다면 하겠죠. 하지만 9년을 투병 생활을 하셨고, 너무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디셨습니다. 그런데 마지막까지 산소마스크를 쓰시고 누워서 삶을 연장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남편의 연명치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난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지칠 대로 지친 나는 기계에 의존해서 삶을 연장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그래도 후회하실 거예요."

"안 해요. 안 합니다."


난 단호하게 이야기하고, 사무실을 나와 병실에 올라왔다. 병실에 올라와서 눈을 감고 자고 있는 그 사람의 얼굴을 보았다. 그도 많이 지쳐 보였다. 얼굴에 생(生)기는 점점 더 사라지고 있었다.


잠시 뒤 간호사가 병실로 와 나를 불렀다.


"보호자님, 아까 행정실 가서 연명치료 거부한다고 하셨어요?"

"네."

"그래도 다시 생각해 보시는 게 어떠세요? 많은 보호자분들이 그거 안 해서 많이 후회하시거든요."

"우리 남편하고도 이야기했어요. 그냥 그렇게 해 주세요."

내가 매정하고 모진 사람처럼 느껴졌다. 남편이 귀찮아서 빨리 포기해 버리는 사람처럼 보였다.

다음 날 간호사가 다시 와서 원장실에서 원장님이 뵙기를 청한다고 말을 전해왔다. 연명치료 거부 때문이란다. 우리도 존엄하게 죽을 권리가 있거늘 병원은 날 가만두지 않았다.


연명치료를 위해 사용되는 병실은 일반 병실에 비해 훨씬 비싸다. 얼마나 있어야 할지도 모른 채 그 방에 들어가는 것은 비용적인 부담도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병원이 우리를 단지 숫자로만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우리는 실적이나 매출에 불과할 수도 있었다. 갑자기 슬퍼지고 화가 났다. 난 원장실에 가지 않고, 거부 의사만 다시 전달했다. 기분 탓이겠지만 원장은 그 뒤로 우리 병실에 오지 않았다.

존엄하게 죽는다는 것. 그것은 마지막까지 기계에 의존하다가 떠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마지막을 내 의지로 결정하는 것이다. 고통 속에서 삶을 연장하는 것을 원치 않는 것이 그의 의지였다. 9년간의 투병은 그에게 충분히 긴 싸움이었다. 이제는 고통 없이, 평안하게 눈을 감을 권리가 있었다. 그것이 내가 그에게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삶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집착을 버리는 것이다. 연명치료는 인위적인 힘으로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것이다. 누구를 위한 연명인가? 내 마음 편하자고 그 사람을 고통 속에서 더 살게 하고 싶지 않았다. 마지막 순간만큼은 평안하게 해 주고 싶었다. 어쩌면 후회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내 욕심과 이기주의를 버리고 그를 위한 선택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내 자식들도 나를 위해 그런 선택을 해 주길 바랐다. 그리고 죄책감에 빠져 있지 않기를 바란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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