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용서

by 솔솔솔파파

그 사람의 기력이 점점 약해지면서 이젠 일어나 욕실까지 가는 것도 힘들다. 그래서 아침마다 내가 하는 일은 수건에 물을 적셔 몸을 닦아 주는 것이다. 얼굴부터 팔다리까지 온몸을 구석구석 닦아 낸다. 난 그에게서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게 싫었다. 나이가 들고, 대소변을 누워서 받아내는 환자가 풍기는 냄새들. 그런 냄새들은 슬픈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생각나게 하고, 치매로 인해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셨던 시어머니를 모시던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난 그 사람이 언제나 깔끔하고, 말끔하게 보였으면 좋겠다. 몸에서는 옅은 비누향이 나고, 머리카락은 얼마 없지만 단정하게 보이고, 얼굴은 막 샤워하고 나온 사람처럼 뽀송뽀송하게 보였으면 했다. 간병은 힘들지만 그런 모습을 보면 나의 기분이 좀 나아졌다.


그날 아침은 다른 날보다 더 깨끗하게 닦아 주고, 손발톱도 깎아 주었다. 왠지 그러고 싶었다.

그런 나를 그 사람은 평소와 다르게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발을 닦을 때도 팔을 닦을 때도 나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내가 뭘 해도 눈길 한 번 안 주던 사람이 오늘은 웬일인지 나를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난 웃으면서 말을 걸었다.


“여보, 오늘은 당신이 너무 예뻐 보인다.”


그 사람은 아무 말 없이 계속해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아우~ 예뻐”


난 어린아이의 맑고 순수한 모습이 너무 예뻐서 얼굴에 계속 뽀뽀하는 엄마처럼, 그 사람 얼굴을 닦아주며 뽀뽀를 했다. 내 얼굴을 그 사람 얼굴에 비비고, 손으로 얼굴을 쓰다듬고, 냄새도 맡았다. 살면서 원수처럼 미웠던 날들도 많았지만, 그날은 왜 그렇게 예쁘게 보였는지 모르겠다.

가만히 있던 그 사람은 입을 뗐다.

“오.. 늘 따라... 왜.. 이.. 래?”


힘없이 내뱉는 소리였지만 또렷하게 들렸다.


“그러게 오늘따라 당신이 너무 예뻐 보이네.”


난 기운 없는 와중에도 나의 애정 표현이 귀찮아 힘겹게 말하는 그 사람이 너무 재미있었다. 아마도 어린아이였으면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 더 짓궂게 장난치고 싶었겠지만, 너무 힘들까 봐 웃으면서 손을 잡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기분이 좋아서인지 마음이 평온해져서 인지 몰라도 난 또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여보~ 정말 미안해. 나만 아니었어도, 당신이 지금처럼 이렇게 아파서 누워있지 않았을 텐데.... 내가 너무 당신 속을 썩여서 당신이 이렇게 아픈 것 같아서 너무 미안해.”


입은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눈앞은 일렁거렸다. 목소리는 떨렸고 호흡은 불규칙했다. 처음 하는 사과도 아닌데 할 때마다 너무 미안하고 죄스럽다. 매일 병과 힘든 싸움을 하고 있는 이 남자를 볼 때마다 미안함에 용서를 구하고 싶었다.


“여보, 나 용서해 줄 수 있어?”


역시 아무 말이 없었다. 그래도 오늘은 섭섭함이 덜 했다.

포기하지 않고 나는 다시 물었다.

“여보, 나 용서해 줘요.”


그 사람의 손에 얼굴을 대고 웃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그 순간 흐릿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 도”


그 사람에게 처음 듣는 말이었다. 암투병을 하던 9년 동안 수없이 많이 사과를 했지만 형식적으로라도 받아주지 않던 사람이 오늘은 드디어 말을 꺼냈다. 그의 한 마디는 내 죄를 신에게 용서받는 기분이었다. 한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동안 힘들었던 내 인생이 보상받는 느낌이었고, 존재 자체로서 사랑받는 느낌이었다. 그 사람에게 품었던 미움도 원망도 모두 눈 녹듯 녹아내렸다.


누구에 대한 원망과 미움이 사라지면, 누군가를 진정 사랑하게 되면 내 마음이 얼마나 가벼워지는지 난 느낄 수 있었다. 순간이었지만 내 마음은 봄 같았다.


“고마워. 여보.”


난 여전히 그 사람 손을 꼭 잡고 있었다. 그런데 그 사람 손이 오늘따라 유난히 더 힘이 없었다.


“여보, 내 손 꼭 잡아봐요.”

평소에 그 사람의 기운을 체크하기 위해 내가 자주 썼던 방법이다. 손을 잡고 내 손을 꼭 잡는 힘을 통해 기운이 얼마나 남았는지 체크했다. 며칠 전부터 손을 잡는 힘이 조금씩 떨어졌지만 여전히 내 손을 잡을 정도의 기운이 남아 있었는데 오늘은 영 기운이 없는 모양이다.

“여보, 다시 꼭 잡아봐요.”


그의 손이 떨렸다. 움켜쥐려 노력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힘이 느껴지지 않았다. 난 손에 힘을 천천히 뺐다. 그의 손이 스르륵 빠져나갔다.


‘툭!’


그의 손이 침대 위에 떨어짐과 동시에 내 심장도 ‘쿵’하고 떨어졌다.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하고 가슴이 조여왔다.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겨우 겨우 힘을 내 난 입을 열었다.


“간호사, 간호사~”


간호사를 외치며 급하게 일어났다. 내 머릿속에 하얗게 불이 들어오고 난 쓰러졌다.

“할머니, 할머니 괜찮으세요?”


옆 침대의 보호자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머릿속 불이 꺼졌다.



다음 편에 계속 됩니다.

keyword
수요일 연재
이전 25화집으로 돌아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