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떠 보니 병원 응급실이었다. 나는 몸을 일으켰다. 아들이 옆에 있었다.
“아빠는?” 대답이 없었다.
난 침대에서 내려오려고 몸을 비틀었다. 옆에 있던 간호사가 급하게 달려와 나를 말렸다.
“할머니 일어나시면 큰일 나요.”
“우리 영감한테 가봐야 해요.”
아들이 날 부축했고, 간호사도 더 이상 날 말릴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병실로 올라갔다. 시누이도 와 있었다.
병실 안으로 간호사가 무슨 기계를 가지고 급하게 들어갔다. 같은 병실을 쓰던 환자와 보호자들도 모두 놀란 얼굴을 우리를 걱정하고 있었다. 난 병실 밖에서 주저앉아 있었다. 가려진 커튼 사이로 그 사람의 가슴에 기계를 갖다 대고 충격을 주고 있는 의사의 모습이 보였다. 반응이 없자 의사는 침대를 심폐소생실로 옮겼다. 상황은 급박했다. 의사도 간호사도 모두 빠르게 움직였다. 하지만 나의 시간은 천천히 흘렀다. 모든 장면이 느린 그림처럼 움직였다. 남편이 오늘 유난히 예뻐 보였던 이유, 마지막으로 용서를 받았던 그 순간, 몸을 깨끗이 씻기고 손발톱도 정리해 준 것. 모든 것이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마지막 준비였던 것만 같았다.
그 사람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나... 도~’였다. 한평생 ‘고생했다’, ‘사랑해’, ‘미안해’ 소리 한 번도 안 한 사람이 마지막 순간에 자신도 미안했다고 용서해 달라고 말했다.
이런 순간이 올 거라고 벌써 몇 년 전부터 준비하고 있었지만 막상 이 순간이 되니 기가 막혔다. 무엇을 해야 할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떤 마음으로 이별을 해야 할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냥 고생만 하고 가는 한 남자가 불쌍하게만 여겨졌다.
심폐소생실로 들어간 의사는 남편의 가슴을 계속 누르고 있었다. 내 가슴이 더 강하게 조여왔다. 난 이제 그만하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다리에는 기운이 빠지고 손은 축 쳐졌으며 입은 자기 멋대로 돌아갔다. 무거운 눈꺼풀을 겨우 뜨고 남편이 누워있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눈물은 하염없이 흘렀다.
살리겠다는 의사의 의지가 보였지만 살아서 무엇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9년이란 시간 동안 너무 고생을 많이 했기에 이제는 보내주고 싶었다.
시누이가 옆에서 날 부축하며 말한다.
“고생했네. 자네는 최선을 다 했어.”
'정말 난 최선을 다 했을까?', '연명치료를 포기한 것은 잘한 것일까?'
'조금이라도 더 살 수 있게 인공호흡기를 하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내 몸 편하자고 저 사람을 너무 일찍 포기하는 것은 아닐까?'
수없이 많은 질문들이 머릿속을 지나갔고, 난 스스로를 검열하면서 죄책감과 후회에 휩싸였다.
그러는 사이 의사가 병실 밖으로 나왔다. 담담한 표정으로 사망선고를 하였다.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나의 반쪽이 사라진 기분이었다. 팽팽했던 끈이 끊어진 듯 내 온몸은 힘이 빠졌다. 내가 그의 병간호를 했던 9년이라는 시간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펑펑 소리 내어 울거라 생각했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냥 눈물만 흘렀다. 누구보다 살고 싶어 했던 그 사람을 살리지 못했다는 죄책감도 밀려왔다.
‘여보, 정말 미안해. 이제 아프지 말고 잘 쉬어.’
이렇게 난 슬픔과 고통과 기쁨과 행복을 함께 했던 나의 반쪽을 보내주었다. 장례를 치르고 시어머니 시아버지 옆에 모셨다.
‘어머니 아버지 옆에서 편안하게 쉬어요.’
모든 예식이 끝나고 남편과 마지막 인사를 나눌 때, 무덤 주변에 나비 한 마리가 날아왔다. 나비는 무덤 주변을 돌더니 내 앞으로 와 잠시 날다가 내가 쓴 모자 위에 앉았다. 남편 영혼이 떠나기 전 인사를 한다며 다들 놀라워했다. 나비는 내 모자에서 몇 초간 머무르다 하늘로 날아갔다. 고생했다고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 같기도 하고,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 것 같기도 했다. 날아가는 나비를 보며 나도 다시 한번 인사를 했다.
‘여보, 잘 가요.’
어머니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이렇게 끝났다. 당신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나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면서 어머니는 울기도 하시고, 웃기도 하시고, 화내기도 하시고, 즐거워하시기도 하셨다. 때론 너무 미울 때도 있었지만 미워할 수 없고, 이해하기도 하지만 서운하기도 한 사람이 바로 아버지이셨던 것 같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어머니는 몇 날 며칠을 사진을 붙들고 몰래 눈물을 흘리셨다. 미안하기도 하고, 그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한 그들과의 마지막 인사 같았다.
어쩌면 그들에게 못 해 준 것에 대한 후회와 미련이 한이 되어 눈물로 흐르는 것 같았다. 나는 조용히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말씀드렸다.
“엄마, 엄마는 정말 최선을 다 하셨어요. 엄마 잘못이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