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떠난 지 여덟 해가 지났지만, 어머니는 아직도 아버지 이야기를 하실 때면 미안함을 숨기지 못하신다. 아버지가 뇌졸중과 암에 걸린 것이 스트레스 때문이고 그 스트레스를 준 것이 자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내가 돈으로 그 사람 속만 안 썩였어도 나는 사랑받고 그 사람은 스트레스도 안 받았을 거야.”
그 말은, 그때 친정 형편이 너무 어려워 집에서 마련한 돈을 할아버지 빚을 갚는 데 보태거나 동생들 일을 돕느라 몰래 건넸던 것을 두고 하신 이야기였다. 아버지도 어려서부터 너무 가난하셨기에 돈이 없어진다는 것은 너무나도 큰 공포였다. 어머니는 살림을 알뜰하게 챙기셨지만, 친정일만은 외면할 수 없어 여러 방식으로 도우셨고, 아버지는 그 점을 늘 못마땅해하셨다.
“여보, 정말 이러다 우리 식구도 다 길거리에 나 앉아요. 제발 친정 도와주는 거 그만해요.”
아버지가 사정하듯 어머니께 부탁하셨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럴 수 없었다. 부모님이 빚 때문에 집에서 쫓겨나 어린 동생들과 남의 집 처마밑에서 밤을 보내는데 어떻게 모른 척할 수 있단 말인가. 어머니는 당시를 떠올리며 말씀하셨다.
“정말 먹지도 못하고, 잠도 못 잤어. 내 가족들이 길바닥에서 자는데 내가 어떻게 이불속에 누워서 잘 수 있겠니.”
나쁜 것은 가난이었고, 죄가 있다면 가난이 죄였던 시절. 누구도 탓할 수 없었기에 가장 만만한 사람에게 화풀이하듯 모진 말들을 하던 시절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모진 말들을 묵묵히 견뎌내셨고, 그때마다 마음 깊은 곳에 못이 박히는 듯한 아픔을 느끼셨다고 했다.
"아버지가 집에 오셨는데 그 사람이 이렇게 말하는 거야. '어이구~ 저 대머리는 왜 또 왔어? 또 돈 빌리러 왔나? 난 잔다고 해.' 그러고는 돌아누웠을 때, 내 심장이 무너져 내렸어."
아버지는 시집간 딸에게 전화해서 “돈 빌려달라”, “돈 구해달라”, “동생이 어려운 데 어쩌냐” 등 어려운 사정을 이야기하는 처갓집 식구들을 보면 화가 나셨을 것이다. 그 마음을 풀기 위해 어머니에게 모진 말들을 참 많이 하셨다.
어머니는 친정 식구들이 짐이 되는 것도 힘들었고, 아버지의 거친 말들을 견디는 일에도 지쳐가고 있었다. 이런 감정들이 쌓이고 쌓여 어머니의 건강이 점점 더 나빠지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상실감과 죄책감까지 겹쳐서 몸이 크게 주저앉았다.
황반변성으로 시력을 거의 다 잃으셨고, 혈압, 골다공증, 공황장애, 관절병 등 안 아픈 곳을 찾는 것이 더 빠를 지경이었다. 이 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공황장애 증상이었다. 갑자기 호흡이 어려워져서 응급실에도 여러 번 실려 가셨다.
아버지에게 서운한 마음이 있어도 죄책감 때문에 미워할 수 없었으니, 아버지가 떠난 뒤에도 마음이 편해지지 않으셨다.
“어제 꿈에 네 아버지가 나왔는데 허름한 옷을 입고 의자에 앉아서 나를 날카롭게 째려보는 거야. 그래서 내가 ‘아니 왜 그렇게 봐요? 어디 불편해요?’라고 물었는데 아무 말도 안 하더라고. 한 번도 날 따듯하게 봐 주지를 않아. 아직도 내가 용서가 안 되나 봐.”
꿈속에서도 어머니는 죄인이었다. 마음이 편안하지 않으니 꿈이 편안할 수 없는 노릇이다. 난 어머니의 병이 마음에서 시작한다고 느꼈다. 특히 공황장애는 심리적인 요인이 클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어머니를 위로해 드리고 싶었다.
“엄마, 만약 엄마가 그 시절 그때로 돌아가면 아빠가 원했던 것처럼 할아버지, 할머니 모른 척하고 사실 수 있으세요?”
어머니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말씀하셨다.
“아니, 또 도와드렸겠지.”
“거 봐요. 그런데 왜 후회를 해요. 엄마는 그냥 살기 위해서 그러신 거예요. 아빠도 살기 위해서, 돈이 너무 무서워서 그러셨던 거고요. 두 분 다 그냥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그러셨던 거잖아요. 살려고 그런 것이니 부끄럽거나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요. 난 엄마가 그렇게 용감하게 사셔서 지금 내가 이렇게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사람은 본능적으로 살려고 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살려내려고 한다. 이를 위해 겁쟁이처럼 도망을 치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숨기도 한다. 가끔 그때 그 시절 내 모습이 너무 추저분하고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지기도 하지만 살아냈다면 잘한 것이다. 사슴이 사자를 피해 도망가는 것이 비난받을 일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어머니에게 할아버지는 누구보다 소중한 아버지였다. 어린 시절부터 할아버지를 사랑하고 존경하던 어머니는, 사업이 실패해 집에 머무르던 할아버지가 안쓰러워 담배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담배를 갖다 드리고, 모은 돈으로는 새 구두까지 사드릴 만큼 정성을 다했다. 시집도 그 사랑하는 아버지가 가라고 해서 온 곳이다. 그런 아버지가 남의 집 처마 밑에서 잔다고 하니 없는 돈도 만들어 갖다 드리고 싶으셨을 것이다.
어머니는 지금도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면 눈시울을 붉히신다. 돌아가신 지 몇십 년이 지났어도 사진을 곁에 두고 계신 걸 보면, 마음속 하소연을 여전히 건네고 계신 것 같다. 세월이 흘러도 진심으로 내 편이 되어주던 부모님은 잊히지 않는 모양이다.
“엄마, 이제 앞으로는 아버지 생각하면서 미안해하지도 마시고요. 할아버지 생각하면서 가여워하지도 마세요. 엄마는 두 분에게 할 만큼 다 하셨어요. 꿈에 나타나면 당당하게 말하세요. 난 할 만큼 했으니까 거기서 행복하게 잘 사시라고요.”
어머니가 웃으신다.
“그래, 네 말이 맞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마음이 훨씬 편해졌어.”
눈물을 그치고 웃으시면서 말씀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니 나도 조금 안심이 된다. 지금도 어머니는 신경정신과 약을 드신다. 그래도 약을 조금씩 약하게 줄이고 계신다. 이젠 응급실도 가시지 않는다. 여전히 여기저기 안 아프신 곳이 없지만 그래도 마음이 조금 편해지신 것 같다.
엄마 집을 나오면서 난 엄마를 꼭 안아드렸다.
“저 갈게요.”
“그래 고마워, 조심해서 가.”
오늘 엄마의 목소리는 ‘맑음’이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