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 그 놀라웠던 시간

by 솔솔솔파파

어머니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드렸던 8개월의 시간. 일주일에 한 번 직접 찾아뵙거나 전화를 통해서 이야기를 들었다. 할 이야기가 없다고 수줍어하셨던 어머니는 한 번 발동이 걸리면 2시간은 순삭이었다. 밥을 함께 먹으면서, 때론 마주 보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함께 살 때는 흔한 일들이었지만 이제는 이렇게 시간을 내고, 마음을 내야 어머니 앞에 앉을 수 있다는 것이 죄송스러웠다. 어릴 적부터 현재까지 어머니가 살아온 이야기를 들었다. 아들이란 이름으로 꽤 오랜 시간을 함께 살아왔지만, 내가 모르는 어머니의 삶이 정말 많았다. 어머니는 지난 세월을 이야기하시면서 펑펑 울기도 하고, 크게 웃기도 하고, 한숨을 깊이 쉬기도 하셨다. 나는 함께 울고 웃으면서 머물렀다. 그렇게 해서라도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최대한 풀어 드리고 싶었다.

시작은 어머니의 심리적 문제로 생긴 병(공황장애)을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완전한 치료는 아니지만, 그래도 전보다는 많이 좋아지셨다. 더 이상 호흡 곤란으로 응급실에 가는 일이 없었고, 섬망 증상도 거의 사라졌다. 심리적 안정을 찾으시면서 목소리도 밝아지시고, 식사도 잘하셨다.


“나 정말 좋아졌어. 너랑 이야기 나눈 후로는 이젠 마음도 편안해.”

어머니가 조금은 가벼워지신 것 같았다.


나는 뿌듯했다. 어쨌든 내가 어머니를 도울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도움을 받은 건 어머니만이었을까? 나는 어머니와 대화를 하면서 나의 삶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어머니처럼 힘든 환경 속에서 살아내고 버텨내려고 애썼던 시간이 내게 있었던가? 어머니처럼 어려운 역경 속에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희생했던 순간이 있었던가? 고통을 회피하고, 불편을 외면하며 선택한 편안함은 오히려 나를 망상 속에 주저앉게 하고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어머니가 살아내고 살려냈던 시간들은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게 해 주었다.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던 어머니의 인생은 고달팠지만, 온전히 살아내고 살려내는 것에 집중하면서 스스로의 삶을 계속 지켜낼 수 있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텨왔는데, 이제 어머니께 남은 것은 다 무너진 체력과 병, 그리고 외로움뿐이다.


그렇게 지켜내려 했던 자식들은 이제 스스로를 지킬 힘이 생겨 떠났고, 배우자는 결국 지키지 못하고 떠나보내셨다. 이제 어디로 향해 달려야 할지 모르는 공허함. 인생을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 모르는 불안감. 분명 옛날보다 삶은 풍요로워지고 걱정을 끼치는 주변인도 없지만, 삶은 무의미해지고 더 이상 존재할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만든다.


결국 어머니는 이런 외로움 속에 혼자 남겨져, 온전히 그 고통을 감당하고 계신다. 어머니라고 왜 외롭고 싶겠는가. 다만, 자식들에게 조금이라도 짐이 될까 걱정하시면서 그것을 외로움을 이겨내는 이유로 삼으신다.

이런 상황 속에서 누군가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것은 나의 존재를 환영해 주는 것이고, 나의 인생을 지지해 주는 느낌일 것이다. 이것이 삶을 용기 있게 살아낸 보통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최소한의 예의이자, 마땅한 존경이 아닐까.


어머니와의 대화를 기록하며 나는 생각했다. 우리 사회가 진정 세대 간 갈등을 줄이고자 한다면, 거창한 복지 정책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그들이 살아낸 시간을 존중하며, 그들이 느끼는 외로움에 함께 머물려야 할 것이다. 누군가의 삶을 온전히 듣는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서로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위로이자 치유이다.


연재는 멈추지만 어머니와의 대화는 계속될 것이다. 마지막까지 혼자 외로이 삶을 마무리하시지 않기를 바란다. 평생이 희생이셨으니 마지막은 사랑이셨으면 좋겠다. 많은 사랑받고 즐겁게 놀다 간다고 느끼셨으면 좋겠다.


그동안 연재를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작은 소망이 있다면 이 글들을 모아 작은 책으로 엮어 보고 싶네요.

읽어 주시고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꿈꿔 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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