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이제 우리 동네로 이사 오세요.”
눈이 갈수록 나빠지시는 어머니. 이제는 버스 번호도 잘 안 보여서 옆에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고 타신다고 하신다. 요양보호사님이 계실 때는 괜찮지만 혼자 다니실 때는 정류장을 놓치거나 버스를 잘 못 타시기도 하신다. 이제는 익숙한 곳이 아닌 이상 혼자 다니시는 것이 힘드셔서 내가 사는 동네로 이사 오라고 말씀드렸다.
어머니는 잠시 고민을 하셨다. 아들이 주부이니 며느리 눈치 볼 필요도 없고, 서울에 병원 갈 일 있으면 아들 차로 갈 수 있으니 몸도 마음도 편하실 것이라 생각했다.
“생각해 봤는데 그냥 여기서 혼자 살래.”
난 당연히 오신다고 할 줄 알고 아내에게도 양해를 구했는데 갑자기 안 오신다고 하시니 좀 서운했다.
“왜요? 제가 아침마다 들려서 엄마 일도 봐 드리고, 병원 갈 때는 같이 가면 좋잖아요. 이제 눈도 점점 더 안 보이시는데 혼자서 어떻게 다니셔요.”
“아직은 괜찮아.”
사실 어머니에게 이 제안을 하기까지 나도 고민이 많았다. 한집에 같이 사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옆 동네로 오시면 자주 찾아 가 봬야 하고, 우리 가족 외식할 때나 여행할 때도 어머니를 신경 써야 할 것 같았다.
집은 우리가 세 놓은 집이고, 만기가 되어 빌 곳이었다. 어머니가 오시면 나는 따로 세입자를 받을 필요도 없고, 관리도 잘해 주실테니 훨씬 마음이 놓였다. 시골이라 매매도 어렵고 전셋값도 변동이 심해서 어머니가 와 계시면 딱 좋겠다고 생각했다.
난 어느새 어머니가 오신다고 가정하고 유불리를 따지고 있었다. 아픈 어머니를 곁에서 도와드리고, 돌봐드려야 한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한 편으로는 이득과 불편한 점 등을 머릿속으로 따지고 있었던 것이다.
'아들, 너희 아이들 참치캔 좋아하지 이거 가져가라.'
'앞집 아줌마가 나 먹으라고 줬는데 난 뭐 잘 안 먹으니까 너네가 가져가서 애들 먹여.'
'내가 먹을라고 주문했는데 내가 뭐 많이 먹니 2개만 남기고 다 가져가.'
'너 저번에 보니까 옷이 추워 보이더라 옷 하나 사줄 테니까 겨울에 입어.'
'너희 마누라 감 좋아하잖아. 감 주문했으니까 택배로 갈 거야. 맛있게 먹어.'
참치캔부터 김, 옷, 과일, 반찬까지 한 번 가면 이것저것 싸주시느라 정신이 없으시다.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까지 ‘뭐 줄게 없었나?’하시면서 발을 동동 구르시는 어머니 모습이 떠 올랐다.
“아니 왜 이사를 안 오셔요?”
난 어머니가 이사 오시면 좋은 점을 다 생각했는데, 어머니가 예상밖으로 안 오신다고 하시니 내가 생각한 장점이 다 사라진 것 같아서 손해 보는 느낌이 들었다. 이것이 내가 서운함을 느끼는 이유라는 것을 알았다.
원래 없었던 것이지만 생각만으로 내 것으로 만들어 놓고, 그것이 없어진다고 생각하니 아쉽고 그 아쉬움을 어머니 책임으로 돌리고 있는 것 같았다.
“너 때문에 못 가. 나야 가 있으면 편하겠지만 네가 애들 셋 챙겨야 하는 데 나까지 챙기려면 얼마나 더 힘들겠냐. 내가 가서 도움은 못 되고 짐만 돼야 하는데 그걸 어찌 가~”
부끄러웠다. 나는 내 유불리를 따지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머니는 끝까지 내 생각뿐이었다.
“내가 눈도 잘 보이고, 거동도 자유로우면 갔지. 가서 너 살림하는 것도 도와주고, 가끔 애들도 봐주고 하면 너도 쉴 수 있고 좋은데. 지금은 내가 아무 도움이 못 되니까...”
자식은 부모한테 아홉을 빼앗고도 하나 더 가져갈 것이 없나 기웃거리는데 부모는 열을 주고도 하나 더 줄 것 없는지 찾는다. 하나 더 줄 때도 혹시 싫어하지는 않을까 하면서 눈치 보면서 주신다. 난 어쩜 이렇게 이기적일까? 겉으로는 아픈 어머니 생각하는 척하면서 뒤로는 자기에게 뭐가 이득인지만 생각하는 아들놈은 창피해서, 미안해서 가슴이 뛰었다.
부모 자식이 같이 살거나 가깝게 사는 것은 둘 모두에게 쉬운 일은 아니다. 부모는 자식이 가깝게 살면서도 잘 안 오면 멀리 살아서 못 올 때보다 더 서운하다. 바빠서 못 오겠지 하면서도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인데도 안 온다고 서운해하신다. 자식은 부모가 가까이 살면 뭐라도 챙기고 신경 써야 하니 부담이 된다. 아이들 챙기기도 힘드니 부모님까지 신경 쓰는 게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결국 을은 부모님이다. 서운해도 말씀도 못 하시고, 서운 하셨다가도 바쁜 자식 보면 괜히 미안해하시고, 아무 도움이 못 된다고 자책하신다.
자식에게 부담 줄까 봐 병원 가실 때 연락도 안 하시고, 길을 잃고 헤맬 때도 전화 한 통 안 하시는 어머니. 안경에 지문이 묻어서 뿌해지기만 해도 답답한데 하루 종일 그런 시야로 버스 번호를 찾으시고, 건널목 파란불을 뚫어져라 쳐다보셔서 머리까지 아프시다는 어머니.
전화 통화 목소리가 이상해서 그때 서야 물어보고 어머니가 아팠다는 사실을 아는 아들. 수십 알씩 드시는 약을 보고서야 요즘 어디가 아프신지 알게 되는 아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로 모든 고마움을 땡치는 아들.
부모는 평생 을이라지만 그래서 나도 우리 자식들한테는 을이지만 우리 어머니는 나보다 더 을인 것 같다. 평생을 가족을 위해 희생하시고도 마지막까지도 짐이 되지 않으시려고 애쓰시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프다. 이젠 좀 도움을 받으셔도 될 것 같은데 마지막까지 자식 걱정이시다.
오늘도 어머니의 깊은 마음을 보며 내가 혼자 저절로 큰 것이 아님을 느낀다.
어머니를 위로해 드리기 위해 시작한 '들어드림'의 여정은 어쩌면 어머니의 깊은 사랑을 확인하는 시간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