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세요. 네, 맞는데요. 뭐라고요? 거기가 어디죠? 알겠습니다. 바로 갈게요."
아이들이 모두 학교에 등교하고, 집 청소를 하고 있던 어머니에게 걸려온 전화 한 통. 병원에서 온 전화였다. 막내 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해 의식을 잃었다는 소식이었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멍한 정신 때문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 채 마음만 바빴다. 우선 되는 대로 옷을 입고 집을 나섰다. 다리에 힘이 풀렸지만 '정신 차리자'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사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현장은 처참했다. 버스는 인도 위에 올라와 있었고, 비가림막과 쇠기둥은 힘없이 쓰러져 있었다. 심장이 더 세게 뛰었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자꾸 안 좋은 생각들만 떠올랐다. '왜 혼자 보냈을까' 하는 죄책감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1년 전에도 골목에서 오토바이에 치여서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 1년 만에 다시 또 사고가 나다니...
버스 정류장 바로 앞 어린이병원에서 아이 이름을 대고 물어봤지만, 아들은 없었다. 부상 정도가 심해 더 큰 병원으로 이송되었다고 했다. 병원 밖으로 나왔을 때 어머니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찻길로 뛰어나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택시를 잡으려 했다. 한 택시가 급하게 차를 세우고 어머니를 태웠다.
"아주머니, 무슨 일인데 찻길까지 나와서 택시를 잡아요? 큰일 날 뻔했어요."
"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했어요. 빨리 중앙병원으로 가주세요." 반쯤 정신 나간 목소리로 말했다.
"아주머니가 정신을 바짝 차리셔야 해요. 이러다 아주머니가 먼저 큰일 나요."
어머니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멀지 않은 거리인데도 가는 시간은 천 리를 가는 기분이었다.
"아저씨, 제발 빨리 좀 가주세요." 어머니는 다급한 목소리로 재촉했다.
집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떨어진 버스 정류장. 국민학교 1학년이던 막내 아들이 학교에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다 일어난 일이었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차량이 정류장 안내판을 들이받았고, 쓰러진 안내판이 아들의 어깨 위로 떨어져 그 자리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진 것이다.
어머니에게 막내아들은 특별했다. 첫째 딸, 둘째 아들을 낳고 셋째를 가졌을 때 주변의 만류로 아이를 지웠다. 사는 형편도 그렇고, 몸도 좋지 않아 더 이상 아이를 갖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 그때도 친정어머니부터 남편까지 모두 아이를 지우라고 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더 이상 아이를 보내지 않기로 결심하셨다. 이 아이만큼은 꼭 지켜야겠다는 생각으로 놓지 않으셨다.
임신 후 몸이 더 안 좋아져 용이 들어간 보약을 드셨더니 아이는 뱃속에서부터 과체중이었다. 사람들은 배가 부른 것만 보고 쌍둥이일지도 모른다고 수군거렸다. 결국 4.6kg의 우량아를 낳으셨다. 출산 후에도 어머니는 계속 몸이 안 좋으셨다. 자궁이 자리를 잡는 데 필요한 시간까지 잦은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이렇게 해서 지켜낸 아이가 지금 어머니 앞에 없었다. 아이를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는 마음으로 뛰어가 드디어 응급실에서 아이를 찾았다. 다행히 아이는 의식을 찾았고, 어머니를 보며 기운 없이 말했다.
"엄마, 나 어깨가 너무 아파."
"어, 그래. 아플 때는 예수님께 기도드리자. 예수님도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많이 아프셨을 거야."
성당에 다니셨던 어머니는 오면서 예수님, 성모마리아님, 하느님.. 모두 불러서 아이를 살려 달라고 중얼거리면서 오셨던 길이라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엄마, 나도 그래서 기도했는데... 그래도 아파."
다친 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또박또박 이야기해서 어머니는 순간 웃음이 나올 뻔했으나 참았다. 한 고비를 넘기니 조금 여유가 생긴 탓일 것이다. 그제야 짝짝이로 신고 나온 신발이 보였다.
어머니가 살면서 가장 지키고 싶었던 것을 지킨 날이었다.
그때의 그 막내 아들은 키우는 동안에도 기쁨이었고, 지금도 어머니의 벗이 되어주고 있다.
바로 지금의 '나'이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출처: Pixabay에서 Myriams-Fotos를 제공한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