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쏠이 Nov 19. 2023

나의 모카포트 혹사기

모카포트 각 부분을 설명하는 그림을 그려봤다

2015년, 이탈리아에 가면 ‘모카포트’를 꼭 사 와야 한다는 말을 주워듣고, 큰맘 먹고 모카포트 하나 구매했다. 볼로냐에 있는 ‘비알레띠’ 매장에서 가장 클래식한 걸로 골라 들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이 ‘이탈리아산 모카포트’는 내 보물이 되었고 이 녀석을 아주 귀히 여겨 커피 한번 끓이고 나면 세제로 박박 씻어 놓곤 했다. 그땐 이 마음이 모카포트를 영영 못 쓰게 만들 줄 몰랐다. 내가 사 온 ‘클래식한 비알레띠 모카포트’는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졌는데, 이 재질은 세제와 수세미에 아주 취약하다. 아. 무. 도 세제로 ‘박박’ 문질러서 모카포트를 세척하지 않는다. 첫 사용 전에 중성세제(주방세제)로 살살 문질러 연마제 따위를 없애는 정도로만 씻지, 과거의 나처럼 매번 세제와 수세미로 알루미늄의 때를 벗기지 않는다. 이 녀석은 산 지 몇 주 되지 않아 바로 녹슬었고, 결국 두 번 다시 쓰지 못했다. 귀하게 여겼으면 관리 방법이라도 좀 찾아보지, 내 방식대로 사랑하는 것은 상대방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길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그린 모카포트 그림

2019년, 다시 이탈리아 볼로냐에 갔다. 2015년에 갔던 그 매장에서 다시 한번 가장 클래식한 비알레띠 모카포트를 샀다. 새로운 모카포트를 구하기까지 4년 걸렸다. 이번에는 두 번 다시 세제와 수세미를 쓰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이 녀석을 쓰기 시작했고, 올해 초까지 아무 문제 없이 잘 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유난히 모카포트가 지저분해 보였던 나는, 망할 어디서 이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는데, 모카포트 바스켓의 내면까지 세척하겠다는 마음으로 커피 대신 베이킹 소다를 바스켓에 때려 넣고 추출했다. 갈색 물이 나와서 속에 있던 때가 다 벗겨지나 보다 했는데, 망할 모카포트 주전자도 까맣게 변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비알레띠 모카포트는 알루미늄이고, 알루미늄은 알칼리성에 취약하고, 베이킹 소다는 알칼리성이다. 이걸 때려 넣고 끓였으니 당연히 부식되겠지.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용감하게 모카포트 하나 더 망가뜨렸다. 모카포트를 잃고 과학 지식을 얻었다. 이번에는 모카포트 꼭 10년 쓰고 싶었는데, 아프다. 그래도 모카포트 하면 나의 바보 같은 행동이 자동으로 떠올라서 좋다. 두 번 다시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겠지. 


요즘엔 모카포트를 한국에서도 괜찮은 가격으로 쉽게 구할 수 있다. 언제 생겼는지 모르겠는데, 네이버에 비알레띠 공식 몰도 생겼다. 그래도 이탈리아 가서 사면 모카포트 볼 때마다 이탈리아 여행 생각나서 참 좋을 텐데. 모카포트로 뽑은 에스프레소의 달콤한 지방 맛도 좋지만, 모카포트 커피를 마실 때마다 문득문득 떠오르는 이탈리아 여행 생각이 더 좋다. 이렇게 한참 쓰다 보니 깨달았는데, 이제 꼭 여행지에서 사 온 모카포트가 아니더라도, 모카포트만 보면 추억들이 연달아 떠오른다. 아무래도 새로운 모카포트는 한국에서 사도 되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여행 가서 사면 더 좋겠다! 다음엔 돈 더 많이 모아서 도자기 모카포트를 사 올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꼬!


왼쪽부터 Etsy에서 발견한 빈티지 도자기 모카포트와 이탈리아 도자기 브랜드 ANCAP에서 만든 도자기 모카포트 마지막은 내가 욕망을 담아 그린 도자기 모카포트


작가의 이전글 커피메이커를 좋아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