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이 되기 전

by 이설

아침이 오기 전이다

풀잎 끝에 빛이 걸려 있다

밤은 물러나지 않았고

땅은 숨을 고른다


몸은 잠에서 덜 빠져나온 채

살이 조금 무겁다

깨어나는 것보다

살아 있는 쪽으로

기운이 남아 있다


손을 내려 흙을 만진다

차지도 뜨겁지도 않은 기운이

손바닥으로 스며든다

이때는 말이 필요 없다

말은 풀을 밟는 소리보다 가볍다


멀리서 사람의 그림자가 하나 지나간다

보지 않아도 기척은 먼저 온다

눈보다 빠른 것 몸에 있다


햇빛이 목덜미에 닿는다

피가 천천히 움직인다

숨은 깊어지지 않고

제자리를 찾는다


부끄러움이 살 아래에서 일어난다

숨길 일도 내밀 일도 아니다

몸이 제 기운을 알아차렸다는 표시다


꽃이 왜 붉은지 묻지 않는다

붉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뜻

지금 이 자리에 있다는 말


바람이 치맛자락을 흔든다

흔들리는 것은 몸이 아니라

몸을 감싸고도는 기운


해가 오른다

그늘이 짧아지고

살은 낮의 것이 된다


아무 말 없이

빛 속에서

몸은 제 무게를 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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