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부는 날에

by 이설

죄가 많다는 말 하나로 조용히 사라졌다. 살아 있다는 것조차 끝내 증명되지 않았고, 바람 부는 날 초라한 꽃 한 송이가 나를 대신해 잠시 놓였다. 그날 이후 바람이 불면 그들을 떠올렸다.


만취한 하루는 예고 없이 온다. 어제와 오늘을 구분 짓지 않는다. 나는 마시는 쪽으로 기울었고 정신은 빨리 닳았다. 굳이 말하자면 스스로 나를 거기에 두었다.


바닥은 편안했고 말이 점점 줄었다.


술잔과 입술 사이에서 하루를 책임지지 못한 채 넘겼다. 웃음은 입가에 맺힌 무해한 흉터였다. 아무도 묻지 않았고 나도 대답하지 않았다.


말이 줄면 하루가 길어진다.


현실에서 물러난 어느 바람 부는 날, 나는 버티지 못하고 울었다. 어쩌면 내가 먼저 운 게 아니었다. 하루가 먼저 무너지며 울었을지도 모른다. 옆에 앉아 무너진다는 말의 의미를 그때 처음 알았다.


내일도 울 수 있겠지만 이쯤이면 울음이 나를 대신했다고 생각한다. 죽고 싶다는 말은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말이 사라진 자리에 아무 말도 자라지 않았다.


바람은 사람 없이 꽃 없이도 그저 불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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