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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부모 마음대로 안 자라요

2010년대 팝의 여왕, 케이티 페리 이야기

by 고독한 사색가

2010년대 팝의 여왕 케이티 페리를 기억하는가? 미국의 팝 가수인 그녀는 2010년대 섹시한 핀업 걸의 대명사였다. 우리나라로 치면 이효리 정도라 할까.


그녀의 유년시절은 어땠을까? 아마 부모님도 끼가 충만하지 않았을까? 연예인 집안이었을지도? 어릴 때부터 대중문화의 폭포 속에서 살아오지 않았을까?


케이티 페리의 유년기

케이티 페리, 본명 케이티 허드슨은 1984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 키스 허드슨은 오순절교회 목사였다. 오순절교회는 통성기도와 방언을 중시하는 근본주의적 개신교 종파다. (우리나라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이 종파다.) 그녀의 부모 또한 교리적으로 아주 엄격했다.

미국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럭키 참스(Lucky Charms)라는 시리얼이 있는데, 허드슨 집안에서 이 시리얼은 금지였다. 럭(Luck)이 악마 루시퍼(Lucifer)를 연상시킨다는 이유에서였다.

서양인들이 흔히 먹는 삶은 계란 요리 데빌드 에그(Deviled Egg - 악마 계란)는 엔젤드 에그(Angeled Egg - 천사 계란)이라고 바꿔 불러야 했다.

허드슨 집안은 대중문화 접근도 철저히 막았다. 허용되는 영화는 수녀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유쾌한 영화 <시스터 액트 2> 뿐이었다. <시스터 액트 1>은 폭력적인 장면이 나오기에 금지됐다.

심지어 10대 시절 마이클 잭슨이 누군지도 모르고 살았다고 하니, 집안 가풍이 얼마나 엄격했는지 알 수 있다.


허드슨 부부는 왜 딸 케이티를 이렇게 엄격하게 키웠을까? 대부분의 목회자 가족이 그렇듯, 딸이 신앙을 위한 삶을 살길 진심으로 바랐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던 케이티는 혼자 집에 남게 됐을 때 항상 노래를 연습했다. 허드슨 부부는 딸 케이티가 음악적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딸이 기독교 가수로서 꿈을 키울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성공한 팝스타, 케이티 페리

2001년, 케이티는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CCM(기독교 음악) 앨범을 냈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이후 그녀는 예명을 케이티 '페리' (페리는 어머니의 혼전 성이다)로 바꾸고 새로운 소속사와 계약했다.


당시 동갑내기 가수 에이브릴 라빈이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소속사는 에이브릴 라빈의 짝퉁 캐릭터로 그녀를 데뷔시키려 했다. 케이티는 외모가 출중했기에 에이브릴과 이미지가 겹치더라도 경쟁력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난 케이티 페리일 뿐, 누군가의 짭이 되기 싫다."라고 말하며 자기만의 스타일을 고집한다.


오랜 고민과 음악작업 끝에 2008년, 그녀는 그녀만의 스타일대로 싱글 1집 <I Kissed A Girl>을 발표하며 팝 가수로 데뷔한다. 이 노래는 동성 간 스킨십을 다룬 노래로, 보수적이었던 당시 미국의 분위기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심지어 케이티는 인터뷰에서 "15살 때 동성 친구와 사랑에 빠진 적이 있다. 짝사랑이었다. 그때의 경험을 토대로 쓴 노래다."라고 밝혔다.


이 앨범은 대박이 났다. 빌보드 차트 7 주 연속 1위라는 대기록을 세운다. 이후 케이티는 성과 사랑 등의 주제로 노래를 계속 발표하며 승승장구한다. 그녀가 크게 성공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포인트는 섹시한 외모였다. 케이티는 172cm의 늘씬한 키와 글래머러스한 몸매를 드러내며 섹시함을 트레이드 마크로 사용했다. 2010년에 남성 잡지 맥심에서는 그녀를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여성 1위'로 뽑기도 했다.


허드슨 부부가 원하던 딸의 삶일까?

케이티는 성공했다. 자기에게 주어진 음악적 재능과 섹시한 외모를 잘 이용했다. 하지만 이 삶이 허드슨 부부가 원했던 딸의 삶일까?


케이티는 동성애를 공개적으로 지지한다. 위에 언급했듯 학창시절 동성 친구를 짝사랑한 적이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동성애는 기독교에서 금기시하는 죄악이다. 또한 인터뷰에서 "나는 신을 믿는다. 하지만 기독교인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목회자인 부모로선 가슴이 무너지는 말이다.

허드슨 부부는 딸이 이렇게 클 것을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케이티는 누구보다 충분히 자아를 실현하며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이는 부모 마음대로 안 자라요

이처럼 자식은 부모가 원하는 대로 자라지 않는다. 하지만 그게 실패를 뜻하지는 않는다. 아이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다. 비어있는 도화지도 아니다. 부모가 쉴 틈 없이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백지로 남아있을 거라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


미국의 할머니 심리학자 주디스 리치 해리스에 따르면 부모가 양육을 통해 자식을 설계할 수 있다고 믿는 건 망상에 가깝다. 아이는 자기가 소속된 또래집단 속에서 지지고 볶으며 스스로 큰다. 그럼 내가 우리 아이를 어떻게 대하든 중요하지 않다는 말인가? 아니다. 부모의 양육은 매우 중요하다. 해리스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첫째, 부모는 어린아이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래서 부모의 행동은 아이들의 행복에 몹시 중요하다. 부모는 아이들의 미래를 설계하거나 만들어나갈 수 없다. 하지만 아이들의 현재를 쥐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아이들의 현재를 행복하거나 불행하게 만들 수 있는 건 부모의 역할이다.


둘째, 부모-자식 관계도 일종의 인간관계다. 상대방에 대한 행동은 인간관계의 질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아이들은 어릴땐 부모의 영향력 아래서 꼼짝을 못할지언정, 성인이 된 이후부터는 부모 품에서 벗어나 자주적 결정권을 행사한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늙었을 때 아이가 당신에게 잘해 주기를 바란다면 아이가 어렸을 때 아이에게 잘해 주어라."


사실 우리는 이걸 잘 알고 있다. 위인전을 통해 나쁜 여건에서도 성공적인 삶을 살아온 위인들의 삶을 수없이 들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어떻게 자라면 좋겠다는 구체적 목표를 설정하고 목표를 달성시키려고 안달복달하는 게 부모 마음이다. 하지만 케이티 페리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아이는 부모 마음대로 자라지 않는다.


아이 성격과 미래는 부모가 설계할 수 없다. 직장 동료를 당신 마음에 쏙 맞게 개조해 낼 수 없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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