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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기 초보 Jul 15. 2022

<잃어버린 도시 Z> 리뷰

인간의 이상과 꿈에 대한 찬란한 여정

중심에서 벗어나 놓친 것을 잡고자하는 열망은 처음부터 그의 미래를 말해준다. 사슴을 잡는 장면에서 남들이 가지 말라는 길로 가서 사슴을 잡는다. 숨을 헐떡이는 사슴을 보며 '죽음이 삶을 찬란하게 해준다'라고 말한다. 모든 것은 그렇게 서술된다.

'Z'라는 마지막 알파벳, 인류가 도달하지 못한 마지막 꿈이다. 단순히 포셋의 꿈만은 아니다. 주변에서 말리고 하지 말라고 하더라도 도달하고픈 열정과 열망이다. 포셋의 첫 여정에서 인디언은 말한다. '당신은 여기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라고 포셋은 그렇게 되었다. 자유롭지 못했다. 단순히 탐험에 미친 것인가? 문명을 발견한다는 것은 단순히 인류사의 발견만 의미하지 않는다. 자신의 자아를 완성하고 놓칠 수 없는 무언가를 가리킨다. 인간은 자아를 발견하고 싶어한다. 꿈을 갖는다. 하지만 현실이라는 것에 포기한다. 포기를 몰랐던 신념, 그것은 꿈에 발을 딛는 순간 시작된다.

중간에 오페라를 하고 있는 부족 집단을 만난다.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하나다. 평화. 새로운 것을 들이지 말고 '우리의 기득권을 유지시켜달라고'. 번역은 기득권이라고 되었지만, 그리고 기득권이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그 의미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탐험은 정복의 의미를 지닌다. 외부에서 누군가 와서 그들의 자리를 없앨 것이다. 실제로 그러했다. 퍼시와 잭이 다시 한 번 그 자리를 찾았을 때 오페라는 들리지 않았다. 그들의 평화는 깨졌고, 사라졌다. 서구의 탐험은 어느한 문명, 혹은 어느 누군가의 기득권의 사라짐을 의미했다. 민주주의, 과학문명, 서구적인 가치를 긍정적으로 본다. 식인풍습, 등 야만적인 그들의 풍습과 대비해서, 그렇다고 사라질만한 내용인가?

서구 중심의 문명에서 야만이라고 불리는 문명. 포셋은 좋지 않은 가문 때문에 중심에서 벗어나 있다. 중심에서 그는 계속 해서 아마존 정글을 향한다. 런던이 아닌 아마존을 향한다. 중심에 대한 거부감, 중심을 벗어난 그는 태생적으로 아마존을 향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편에서 그도 중심이다. 백인 남성이다. 니나를 향해서 여성의 일과 남성의 일이 따로 있다고 한다. 누구보다 모험적이고 지적인 여성인 니나인데도 말이다. 중심과 변주 사이에서 포셋은 향상 갈등한다. 가족과 런던, 모험과 아마존, 삶과 죽음, 성공과 탐험, 그에게는 갈등이 항상 상존한다. 우리는 어떠한 가치에 긍정을 부여하고 우월을 부여한다. 잃어버린 문명을 향해 가는 포셋의 여정은 그 우월과 긍정의 가치에 물음 제기한다. 수학적으로 완벽한 인디언의 밭은 서구가 우월하지 않음을 말하듯이.

대부분의 포셋의 여정을 수평을 향한다. 많은 장면은 수평의 움직임을 보여 준다. 수평을 유지한다는 것은 영화적인 스펙터클보다는 포셋의 내면이 이 영화가 추구하는 가치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문명의 우월을 보여주고자 하는 모습이 아니라 다른 문명에서 문명으로 방문하는 그저 하나의 행동임을 보여준다.

포셋은 아들 잭과 함께 결국 Z가 된다. 죽었다는 표현은 적당하지 않을 것이다. 찬란하게 완성되었다가 맞을 것이다. Z는 문명이 아닐지도 모른다. 서구라는 중심적인 사고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인류의 가치일 것이다. 죽음이라는 가치를 부정적으로 본다. 삶에 우위를 둔다. 일반적으로 죽음은 하강으로 표현된다. 하지만 잭과 퍼시는 죽음으로 예견되는 과정에서 높은 산을 향해 간다. 하강이 아닌 상승을 향해 간다. 우월과 열등, 하강과 상승은 그렇게 무너진다.

죽지 않을 것일 수도 있다. 잭과 퍼시는 죽음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인디언 문명에 순응했을지도 모른다. Z를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Z가 알려지는 순간 Z는 사라질 것이다. 서구는 찾아오고 결국 Z는 서구인들에 의해서 사라질 것이다. 빛나는 Z를 지키기 위해서 그들은 죽은 것일지도 모른다. Z는 퍼시의 꿈이다. 퍼시는 자신의 꿈이 사람들에게 말해지는 순간 비웃음 받는 경험을 했다. 지리학회에서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Z라는 그의 꿈을 지키기 위해서 세상에 그는 자신의 꿈을 알리지 않기로 한 것일 수도 있다.

마지막 장면 니나가 왕립지리학회를 나설 때, 문 밖에는 아마존의 열대 우림이 펼쳐져 있다. 제임스 그레이의 전작인 <이민자>의 마지막 장면과 유사한 미장센을 보여 준다. 아마도 니나의 죽음 암시하는 장면일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니나는 퍼시와 잭을 만나로 가는 길이다. 또 다른 여정 떠난 한 사람의 모습이다. <이민자>에서 서쪽으로 향할 자매의 모습을 보여준 것처럼, 문명이라는 공간을, 삶이라는 공간을 벗어나, 죽음, 하지만 또 하나의 찬란함을 향해 가는 여정이다. 왕립지리학회의 건물은 문명과 삶과 영광 등 우리가 붙잡고 있는 가치이다. 생존과 삶이라는 의미에서 잃어버린 인간의 또 다른 의미, 꿈, 죽음을 향해 가는 것이다.

물론 영화의 주인공은 백인 남성이고, 영국이라는 제 1세계의 주인공이다. 빈민도 아니고 몰락했지만 좋은 집안 사람이다. 그는 중심이면서 변방이다. 변방과 중심은 혼재되고, 스스로도 혼돈을 맞이한다. 자신의 위치에 대해서. 위치에 대한 고민은 꿈과 현실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그런 점에서 단순히 백인 남성 영국이라는 중심인으로만 해석할 수는 없다. 그 점이 한계는 있지만 오히려 대비를 강화시키고 주제를 강화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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