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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기 초보 Jul 15. 2022

<해피 아워> 리뷰

이해와 연대는 상대방을 보는 게 아니라 잠시나마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는

관계는 원을 만드는 것인지, 아니면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인지, 아니면 갈 길을 갈 수 있게 붙잡지 않는 것인지. 연대와 개인은 따로 그리고 같이. 우선 5시간이 넘는 영화인데 신기할 정도로 안 지루하고 재미있다. 몰입도 잘된다. 대사와 상황을 정말 잘 만들었다. 사실 이 영화가 무엇을 말하는지 다 알 수는 없겠다. 하지만 매력있다. 그리고 계속 보게 된다. 시나브로 영화가 관객에게 스며 들기 위해 5시간은 길지 않은 충분한 시간이다. 영화 속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준이다. 준은 4명이 서로 친구가 될 수 있게 이어 준 연결점이기도 하지만 친구 간에 갈등을 시작하게 하는 시작점이기도 하다. 그리고 연결을 시키고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린 대상이다. 그들 주변의 관계는 준의 자장에서 움직인다. 준은 가장 처음 깨닫고 가장 먼저 자신의 길을 향해 발을 뻗는 사람이다. 그래서 준은 4명이 완전한 관계라고 믿었던 관계에 균형을 가한다.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균열되는 시작점도 준이다. 준이 이혼을 한다는 것을 말하는 순간부터 갈라진다. 주변인과의 갈등이 이루어진다. 갈등에서 인물들의 위치와 쇼트는 중요해진다.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 푸니쿨라를 타며 올라간다. 그들은 서로 마주보지 않지만 같은 곳을 바라본다. 그리고 서로의 옆에 존재한다. 전망대에 올라간 이후 그들은 서로를 마주본다. 쇼트의 연결은 오즈의 영화에서 자주 본 것처럼 180도 법칙을 무시하면서 구성된다. 관행적으로 이루어지는 편집이 아니다. 영화는 처음부터 관행적으로 이루어지는 편집을 무시했다. 관행적으로 바라보는 무언가에 대한 의문을 감독이 분명 가지고 있음을 숨기지 않는다. 항상 연대하고 항상 함께 하고 고민을 나누고 항상 조건 없이 사랑해야한다는 관행을. 우카이라는 남자가 보여주는 워크숍 장면에 30분 가까운 장면에서 보여준다. 마치 자크 리베트의 <아웃원>에서 연극장면을 롱테이크로 쉬지 않고 보여주는 것처럼. 5시간에 가까운 긴 영화라고 하지만 30분은 어찌 되었든 대단히 긴 시간이다. 긴 시간이라고 하지만 인물들의 관계나 이야기의 변화는 크게 보이지 않는다.  영화의 초반부에 등장한다는 점에서 관계에게 영화가 어떤 방향인지 고민하게 한다. 우카이라는 남자는 고베 지진 이후 도호쿠 대지진까지 경험한 남자다. 그는 중심과 소통에 대해서 말한다. 머리를 서로 맞대고 생각을 전달 받으며, 중심의 소리를 듣고자 한다. 서로 원을 만들고 일어나고자 한다. 그는 소통에 대해서 쉽게 설명하지 못한다. 중심을 잡는 것에 대한 의미를 쉽게 말하지 못한다. 우리는 소통을 하고 중심을 잡고 함께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왜 그래야 하는지 쉽게 설명하지 못한다. 그저 사회에서 그게 좋다고 말하니. 관계는 좋고, 안정된 제도 안에서 우리를 의지하게 하는게 옳다고 믿으니. 4명의 친구가 대화 중에 대투는 장면은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테이블의 구조다. 워크숍이 후 뒷풀이. 준이 사라진 이후 준의 전 남편과 친구들의 마주보는 테이블, 그리고 낭독회 이후의 뒷풀이. 그리고 남편과 마주 보고 있는 장소들. 우리는 상대방을 마주 보고 있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대화의 순간에서 나오는 말들은 각자의 이야기들 뿐이다. 이해라고 하지만 각 자가 자신의 시선에 상대방을 집어 넣는 과정일 뿐이다. 마냥 바라본다고 이해하는 것인가. 듣고 있다고 이해하고 있는 것인가.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이해한다고 하는 것, 그리고 이해한다고 주절주절 떠드는 것, 그게 이해와 공감은 아닐 것이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사쿠라코와 사쿠라코의 시어머니가 같이 걷는 장면이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지 않는다. 하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연대하는 느낌을 준다. 연대를 위해서 서로를 바라보고 이해할 필요가 있을까? 서로를 생각한다고 바라보는게 이해는 아니다. 다만 같은 곳을 볼 수 있으면 되는 것 아닐까? 이해와 연대는 마주침이 아니라 기댐이라는 것은 다른 장면에서도 나온다. 사쿠라코와 후미가 낭독회가 끝나고 지하철에 탄 이후 서로에게 기대는 순간 서로 변한다. 특히 사쿠라코는 남편을 벗어나서 자신을 찾는다. 마주침으로 서로 재단하지 않고 각자의 시선을 유지한 상태로 서로에게 기댈 때 연대가 되는 것일까. 여행 가서 마작을 할 때, 카메라를 바라보며 자기소개를 하는 장면은 너무나 급작스럽고 부자연스럽다. 카메라 타자가 없이 온전히 자신들만 담긴 순간, 자신들을 알려준다. 결국 온전히 자기 자신만 존재할 개인으로 바라볼 때 이해를 할 수 있는 것인가. 영화에서는 연대가 서로를 마주보고 중심을 잡는 행위라고 말하는 것 같지 않는다. 또한 연대 이전에 개인을 말한다. 그렇다고 연대가 필요 없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때때로 잠시 지나가는 위로처럼 있어주기를 바란다. 낭독회에서 수 많은 관객이 잠시나마 같은 곳을 바라보며 서로 공감했듯이 잠시 잠깐 같은 마음을 갖는 순간이다. 4명이 완벽한 우정이라고 서로에게 모든 것을 터놓고 말하고, 온전히 이해한다고 믿었을 때 서로에게 폭력이 되었고, 오해가 되었던 것처럼. 온전히 행복은 개인에게서 있는 것이다. 때때로 기댈 수 있는 연대가 필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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