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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기 초보 Jul 15. 2022

<큐어> 리뷰

우리, 인간 깊숙하게 담긴 원초적인 불안 그 자체.

우리는 모두 살인자가 될 수 있다. 그 근원은 불안이고, 일상이다. 교사, 경찰, 의사 등 평범한 사람들, 모두가 가진 불만이기도 하다.

 마미야에게는 별다른 과거와 기억이 없다. 왜냐면 마미야는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다. 우리들, 사회의 내면에 있는 또다른 모습을 깨어주는 환경일 뿐이다. 불이나 물과 같은 원초적이고 우리 삶 근처에 있는 것들 아주 평범한 모습 자체가 우리의 공포와 불안, 살의 같은 것과 함께 있다. 그 것을 마미야는 말할 뿐이다. 마미야는 끊임 없이 '당신은 누군데'라고 묻는다. 경찰, 초등학교 교사이라고 대답하는 것 말고 다른 이야기를 요구한다. 내면에 다른 진짜 너를 깨우라는 주문이다.  우리는 내면에 대해 내면 스스로 묻는 질문이다. 당신은 당신이 누군지 알고 있는가. 특별한 사람이 살인자가 되는 게 아니다. 우리 안의 평범한 불안과 공포, 살의는 그 자체로 충분한 동기다.

다카베와 마미야의 병원 안에서 서로 대화를 하는 연극적인 장면. 다카베는 현대인들의 표상 자체다. 경찰이고, 남편이고, 사람이고 그 무게를 지니지만 숨기고 살아야 하는 모두가 그래야 한다는 그의 말처럼 우리는 다 그렇다.

초반 푸른 수염의 이야기는 우리가 살의를 일으키기에는 푸른 색 수염과 같은 특이하지만 사소한 동기면 충분하다.

왜 일본에 처음 메스머를 도입한 그 강령술사의 얼굴은 없는가도 생각해봐야 한다. 모두의 얼굴이기에 없는 그의 얼굴, 그 얼굴은 우리의 얼굴이 아닐까 한다.

마지막에 마미야는 사라졌다. 하지만 식당 종업의 마지막 장면은 살인이 일어날 듯한 느낌으로 끝난다. 마미야가 전부는 아니다. 마미야는 원래부터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디에나 언제나 있는 그런 존재이다.

영화는 그 자체로 꿈이고 무의식적이다. 차를 타고 가는 다카베의 장면들, 차창 밖의 풍경은 잘 보이지 않는다. 구름으로 둘러 쌓인 없는 듯한 공간들. 낡고 허름한 병원, 어두운 조명 영화를 지배하는 이미지다. 현실이라기 보다는 모호하고 몽환적이다. 우리의 현실 깊숙한 다른 공간이 영화의 공간이다. 우리의 무의식에 있는 모습을 영화는 보여줄 뿐이다.

마지막 축음기 장면. 사회에 대한 치료를 말한다. 억압된 인간들, 건강한 것처럼 보이지만 모두 병든 자아이다. 죽음이라는 마지막 통로, 혹은 분노의 표출. 마미야는 아마도 그 것을 위한 치료제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다카베가 그 치료제 큐어가 되는 것이다. 살인, 즉 불안과 공포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마미야 하나가 없어졌다고 없어지지 않는다. 그저 인간이 있는 한 언제나 끝까지 있다.

영화에서 공포를 자아내는 능력, 집중력있게 끌고 가는 능력은 너무도 뛰어나다. 소란스럽지도 않지만 끝까지 집중력을 놓치지 않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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