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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기 초보 Jul 15. 2022

<플로리다 프로젝트> 리뷰

“저 쪽에 가면 더 좋은 게 있을지도 몰라”

모텔 관리인 바비는 모텔 주차장에 들어온 세 마리의 새에게 “저 쪽에 가면 더 좋은 게 있을지도 몰라”라고 말한다. 마치 스쿠티, 무니, 젠시 세 명의 아이에게 말을 하듯이. 분명 아이들에게는 매직 캐슬보다 반대편에 있는 디즈니랜드가 좋을 것이다. 가난하지도 추한 것을 보지 않고도 행복할 수 있는 곳이니. 바비는 아이들이 그런 곳에서 자라기 바란다. 그래서 핼리에게 아빠 같은 조언을 하고 기꺼이 자신의 돈 10달러도 쓴다. 뉴저지에서 온 아동 성애자 일지도 모르는 소다를 마시고 싶은 사람도 쫓아낸다. 바비는 그런 어른이다. 하지만 바비는 아무 것도 바꾸지 못한다. 아동국 직원이와도 조용히 지켜본다. 우리는 마치 바비처럼 스쿠티, 무니, 젠시 그리고 핼리를 동정한다. 도와주고 싶어한다. .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선을 벗어나지 못한다.

“무지개 넘어 뭐가 있을까”

젠시는 무니에게 묻는다. 무니는 황금이 있다고 한다. 천진난만한지만 그들의 동심은 어딘가 다른 곳을 향한다. 그들의 매직캐슬이라는 재미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임을 일고 있다. 매직캐슬이 진짜 매직캐슬이 아님을. 자신들을 속이고 있음을. 그래서 그들도 다른 곳을 꿈꾼다.

“나는 이 나무가 좋아. 쓰러진 상태로 계속 자라잖아.”

무니는 젠시와 나무 위에서 잼을 발라먹으며 말한다. 무니는 알고 있다. 자신의 처지가 이 나무 같다는 것을. 처음부터 쓰러져서 완전히 꺾인 거지 같은 환경. 그래도 나무는 무니는 자란다.

“표정만 보면 알 수 있어. 지금 저 여자는 슬픈 거야.”

브라질인 신혼부부를 본 무니는 말한다. 여자의 얼굴에서 슬픔을 읽는다. 슬픔이 익숙하다면 이상할 것 같은 나이가 무니의 나이다. 하지만 무니는 그 슬픔을 읽을 만큼 이미 슬픔에 익숙한 것이다.

영화의 엔딩 무니와 젠시는 떠난다. 진짜인지 아닌지 모른다. 그저 괴로운 이 순간을 위로하고픈 젠시의 마음일지도 모른다. 현실은 괴롭다. 하지만 영화는 환상적이다. 현실의 매직캐슬이라면 지독하게 괴로울 것이다. 하지만 영화 속 매직캐슬은 디즈니랜드보다 재미있고 아름답다. 그렇지만 영화마저 끝끝내 현실을 벗어나지 못한다. 핼리는 소리를 지르고, 무니는 운다. 아무리 영화가 현실을 외면해도 현실은 끝끝내 나타난다. 영화가 현실을 아이들의 천진난만함으로 포장할려고 해도 결국은 영화 안으로 스며든다. 그 속에서 젠시가 무니의 손을 잡고 뛰는 것은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믿고 싶은 젠시의 마음이다. 또는 현실 속의 희망을 믿고 싶은 관객의 마음이다. 그리고 현실을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 영화의 그리고 감독의 꿈이자 환상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엔딩은 또 다른 영화이며 판타지다. 매직캐슬이라는 영화 속의 또 다른 현실을 벗어난 영화 속의 영화. 언젠가는 그 영화 속 영화에도 현실은 스며 들겠지만 도망치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그들의 또 다른 영화이다.

무니, 스쿠티, 젠시 그들은 마냥 아이는 아니다. 그저 천진난만하지도 않다. 세상은 그들이  날때부터 이미 거기 있었으니. 그들의 천진난만함도 어찌보니 이미 그들이 있는 곳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곳을 잊기 위한 자기 위안이 아니었을까? 무니, 젠시, 스쿠티는 너무도 현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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