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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기 초보 Jul 15. 2022

<유레루> 리뷰

흔들리는 것은 진실인지 형제관계인지 모르겠다.

영화 속 진실은 곧 형제애이고 형제애는 곧 진실을 만들어낸다. 동생만이 유일한 증인인 상황에서 동생의 형에 대한 마음이 진실이 된다. 그렇다면 동생의 흔들리는 마음은 무엇이 될 수 있을까가 이 영화에 질문이자 주제가 된다.

영화 속에서 두 형제가 등장한다. 하나는 다케루 형제, 또 다른 하나는 다케루의 아버지와 큰아버지다. 두 형제는 상반된 형과 동생이 있다. 다케루의 큰아버지는 변호사이지만 다케루의 아버지는 기름집을 한다. 둘의 사이는 좋지 않고 둘은 보면 다툰다.  다케루 형제는 비슷하지만 다르다. 자유롭게 사는 동생과 그런 동생을 바라보는 형. 서로가 서로를 부려워한다.

다케루 아버지와 큰아버지는 자세히 그려지지는 않는다. 다만 추측할 수 있다. 장남을 기르기 위해서 동생들이 희생한 그 정도의 그림이 그려진다. 하룻밤만 큰아버지에게 자고 가라고 말하는 타게루. 그런 타게루의 부탁에 큰아버지는 마지못해서 자고 간 듯하다. 이어지는 컷에서 타케루는 담배를 피고 있고 두 명이 코를 고는 소리가 들린다. 사이 좋지 않은 형제이지만 그래도 형제의 모습.

타케루 형제의 이야기로 가면 아버지 형제와 다른 모습이다. 둘의 사이는 좋다. 형은 집을 위해서 희생했지만, 동생은 자유로운 삶을 골랐다. 다른 듯 같은 두 형제다. 둘의 본심 아니 형의 본심은 영화 내내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동생에 대한 부러움과 형으로서 의무감. 과연 어떤 것이 먼저였을까? 동생도 마찬가지다. 형에 대한 믿음, 진실에 대한 믿음. 모든 것이 흔들리는 다리처럼 흔들리며 변해 갔다. 그런 수만가지 감정들이 영화 속에서는 부딪힌다. 법정 드라마의 구조 속에서 어떤 게 진실인지 관객은 알 수 없다. 사건의 주인공은 미노루일 것이다. 하지만 영화 속 주인공은 타게루다. 타게루의 시선으로 영화를 보는 관객은 타케루에 이입할 것이다. 타게루가 말하는 진실을 믿을 것이다. 그렇다면 타게루가 보는 진실은 무엇일까? 타게루의 흔들리는 감정의 본질은 무엇일까.

흔들린다는 것은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는 뜻이다. 관객도 타게루도 흔들린다. 감정에 흔들리고 그에 따라서 진실에 흔들린다. 서로를 부러워했지만 그 부러움 조차도 자신의 이기심이라는 점을 알아차렸을 때 영화는 끝난다. 그렇다면 해피엔딩일까? 타게루 형제의 미래는 타게루 아버지 형제의 미래일지도 모른다. 감정은 그렇게 흔들리고 어디로 갈지 모른다. 질투와 시기, 사랑 등 지금 이 감정이 있다고 그게 다 진실된 감정은 아닐 것이다. 흔들리는 다리 같이 계속 그 상태로 머무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다른 곳으로 가는 것도 아니다. 그 사이를 왔다 갔다한다. 형제라는, 가족이라는 끊어질 수 없는 인연 속에서. 참회하고 용서하고 질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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